덕분에 몸속 깊숙이 한기가 파고든다. 싸 온 옷을 겹쳐 입고 미리 예약해 둔 데이투어를 준비한다. 나야 10년 전에 한번 와본 곳이라 필수코스에는 미련이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 숙제처럼 투어를 신청했다.
대만에 오면 꼭 봐야 하는 리스트 중 '예. 스. 진. 지'투어가 있다. '예'는 예류지질공원, '스'는 스펀 풍등 날리기와 폭포, '진'은 진과스 광부마을,'지'는 야경이 예쁘기로 소문난 지우펀이다. 그런데 우리 큰 따님의 요청으로 '진'을 빼고 허우통 고양이마을 투어를 신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예. 스. 허. 지' 투어를 간다. 따로 보러 가기엔 부담되고 안 가자니 서운한 코스다. 그래서 과감히 버스로 편하게 몰아서 보기로 한다. 만원 조금 넘는 비용으로 장거리 이동의 불편함을 덜어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예류지질공원
한 시간 남짓 버스로 타고 간다. 대만인이지만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가이드의 귀여운 억양의 설명을 들으며 간다. 스스로 중국어와 역사를 전공하는 똑똑한 학생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그 자신감이 마음에 든다.
예류지질공원은 1천 년~2천5백 년에 걸쳐 풍화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지형으로 기암괴석이 많은 공원이다. 특히, 고대 이집트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두상을 닮아 이름 붙여진 '여왕 바위'는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로 유명하다.
사람들은여왕님 사진을 찍으려고줄서서 기다리지만 나는 멀리서 여왕님을 바라본다. 10년 전보다 많이 야위었다. 바람에 깎여 그랬는지, 목이 너무 가느다랗게 얇아져버린 것 같은 느낌. 이러다 여왕님 사라지시면 어쩌나.
예류의 여왕바위
이곳엔 우리나라 제주도의 현무암과 닮았지만 구멍이 더 크고 색깔도 갈색인 바위들이 많다. 그런데 변덕스러운 날씨와 비바람은 똑같이 닮았다.
스펀, 소원을 빌어 날리다.
다음은 스펀, 깊은 산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일본의 식민지를 50년간 겪은 대만은 무엇보다 산이 많고 금도 많았다. 일본은 통치기간 동안 약 50톤 정도의 금을가져갔다고 한다. 1톤의 흙을 캐면 1그램 정도의 금이 나오는 데, 이곳은 2~3g의 금이 나와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었다고. 예전에는 광산업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지금은풍등에 소원을 날려 보내는 관광객체험을 주로 하는 마을이 되었다.
가이드의 안내대로 버스에 내리자마자 지체 없이 풍등이 준비된 상점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커다란 풍등이 쓰기 좋게 집게에 펼쳐져 있다. 풍등의 4면에 각자의 소원을 적고 철길 위로 나간다. 순서를 기다리면 직원들이우리에게 딱 맞는 포즈를 요구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진을 찍는다.우린 시키는 데로고분고분 따라한다. 거의 공장에 가까운 자동화 시스템이다. 빠르게 움직이며 풍등을 날리고 미션완료! 그런데어라~? 막내가 만든 풍등의 방향이 이상하다. 삐딱하게 날아가더니 근처 나무에 걸려 타고 있는 것이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던 터라 화재의 위험은 없었지만 막내는 금방시무룩해진다. 속상한 마음을 알았는지 직원이 작은 풍등 액세서리를 건네준다. 어느새 아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순수한 아이의 마음처럼 힘든 일, 속상한 일은 금방 사라지고 풍등에 날린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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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통 고양이 마을의 비밀
다음 행선지는 고양이 마을, 좀 전보다 비가 더욱 거세진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행기간 동안 가장 날씨가 안 좋았던 날이 하필 이날이었다. 그런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빡쎈 일정은 그대로 진행된다. 우리가 누군가 불굴의 민족, 대한민국 아닌가. 가이드는 한 시간 자유시간이라고 말하고는 버스는 마을입구서 한참 떨어진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마을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15분이 지난 상태, 시간이 금이라는 말은데이투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입구의 영험한 기운
마을입구에 내려 둘러보니, 일본 애니에서나 보던 신비로운 분위기의 마을이 펼쳐진다. 요정이나 산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영험한 기운이랄까. 뿌연 안개뒤로 낡은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보이지만,우리는빗속을 뚫고 바쁜 걸음으로 무리 지어 걸어갈 뿐이다. 투어로 오지 않았다면 조금 무서울 뻔했다는 생각이 스친다.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오르고 낡은 기차역을 지나고 작은 상점을 지나는데 고양이 마을답게 귀여운 그림과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마음이 놓이고푸근해진다.
초록초록한 식물들이 물기를 가득 머금고 고양이 캐릭터가문 앞을 지켜주고 벽과 공간을 채운다. 이렇게 꾸며놓으니 보기만 해도 따스함이 전해진다. 골목골목을 탐험하듯 구경에 나선다. 왠지고양이 마을의 비밀을 하나씩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저 멀리 고양이가 보인다. 살금살금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조용히 찾아보면 상점이며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고양이 집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집 딸들은 양이님들이 도망갈세라 잔뜩 몸을 수그리고 조심조심 다가간다. 소녀들은 냥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겨비 오는 날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접선할 뿐이다.
산 위의 마을, 야경이 아름다운 지우펀
오늘의 마지막 코스, 지우펀. 예전에 부자광부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요즘은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만 명씩 이곳을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고. 무엇보다 홍등이 걸린 골목과 야경이 멋있는데 오늘은 다행히 평일이라 인파에 휩싸이지 않고 나름 편안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두 시간이라는 과분한 자유시간을 얻어 저녁식사도 하고 기념품샵도 구경한다. 대만의 명물 펑리수(파인애플과자), 누가크래커, 우롱차 등의 체인점이 거의 다 여기에 있어 뭐든 다 맛볼 수 있다. 그런데 가져갈 짐이 많아지니 딱 한 상자씩만 사고 그만둔다. 그저 비 오는 거리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