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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03. 2024

[타이페이]하나만 투어:미적지근한 온천이면 어때?!

세 모녀, 타이베이 방랑기(6)

4박 5일 대만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다녀온 힘든 데이투어의 여파로 힐링이 시급한 . 신베이터우의 온천엘 가기로 한다.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 생각에 출발 전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타이베이역에서 지하철로 40~50분 떨어진 곳에 신베이터우역에 온천이 있다. 키티로 장식한 지하철이 우릴 반긴다. 이렇게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온천을 경험할 수 있다니 뚜벅이 여행족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키티로 꾸며진 지하철

몽글몽글 김이나는 개천

동네전체가 온천으로 특화된 곳인 듯 졸졸졸 흐르는 개천에서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특유의 냄새도 한몫해서 온천에 왔음이 실감 난다.

온천물이 흐르는 신베이터우 작은 시냇물


 온천 입장권을 예매하고 온천이 있는 호텔로 찾아간다. 깔끔하고 정갈한 입구에 마음이 놓인다. 그 이후는 한국의 대중탕과 똑같다. 다만 머리에 캡을 반드시 쓰라고 당부하는 것만 다르다. 탕 내부에 들어가니 한적한 모습이다. 탕 속에 슬그머니 발을 담가본다. 우리나라의 온탕에 비해 상당히 온도가 낮다. 미지근한 40도 안팎,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온도이다. 뜨끈하게 지지는 걸 좋아하는 중년엄마들의 마음을 얻기엔 살짝 모자라겠지만. 사우나는 혹시 뜨끈할까 들어가 봤지만 역시나다. 50도 정도라고 온도계엔 표시되어 있는데 영 미적지근한 게 코리안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한동안 쉬고 나니 한결 몸이 가볍다. 상쾌해진 기분으로 탕을 나온다.

수미온천 홍보이미지


대만에서 김치를 만났다면

근처 맛집을 검색해 보라고 첫 딸, 1호에게 부탁해 둔 터였다. 10분만 걸으면 된다고 했는데 20분을 넘게 걸어도 검색한 그곳이 안 보인다. 사춘기, 큰딸 1호가 찾았으니 힘들어도 꾹 참고 가자는 데로 끝까지 가본다. 앗, 드디어 도착. 리뷰에서 맛있다고 소개된 볶음밥과 삼겹살 튀김을 시킨다. 그런데 기다리던 메뉴보다 김치가 먼저 나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인이 한국인이라 김치가 나온다고 1호가 얼른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오랜만에 만난 김치와 친구들

오. 근데 다 맛있다. 볶음밥은 밥과 계란이 따로 나오는데 달걀스크램블에 무슨 양념을 했는지 밥도둑이 따로 없다. 같이 시킨 양배추볶음과 함께 먹으니 환상의 콜라보. 느끼할 땐 김치 한 점, 딱 좋다! 삼겹살구이는 고기에 중국식 양념을 해서 느끼함을 잡고 은 튀김옷을 입혀 바삭한 식감을 더했다. 마무리로 고기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그 든든함에 저녁식사를 거르기까지 했다는 건 안 비밀.


세 모녀의 여행은 특별하다.

천천히 밥을 먹고 어딜 갈지 딸들과 정한다. 나는 안 가본 중산거리를  가보자 했고 딸들은 융캉제거리가 또 가보고 싶단다. 못 먹어본 망고빙수와 버블티도 먹고 싶다면서. 다 해보기로 한다.


세 모녀가 같이 다니는 여행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취향은 비슷하니 어디갈지 뭘하고 뭘 먹을지 정할 때 편하다. 하지만 자잘한 심경의 변화와 까칠함으로 티격태격해서 조금 힘들다.

1호님의 막내사랑은 놀리기와 잔소리였다. 그러다가 결국 막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과격한 표현법이지만 필요할 때는 동생을 끔찍이도 챙겼. 엄마에 대한 애정은 무제한 폭격 잔소리로 대변되었는데 가끔 열받는 순간이 나를 시험에 들게했다. 그래도 큰 화를 내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한 나를 칭찬한다.


어느 날은 숙소 앞 신호등에서 기다리는데, 고장 났는지 계속 깜박이기만 한다. 몇몇 사람들이 그냥 건너길래 나도 따라 건너려 하자, 뒤에서 1호의 잔소리 폭격이 쏟아진다.


아니, 엄마.
지금 건너면 어떡해? 깜박이는 거 안 보여. 정말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길게 많이 잔소리를 했다. 순간 욱했지만 공중도덕을 지키려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자 마음을 가다듬고 가려던 길을 멈추고 기다렸다. 끝끝내 신호등의 깜박거림이 멈추질 않자, "아. 왜 이게 안 켜지지?"혼잣말을 하더니, 1호가 슬그머니 건넌다. 나도 따라 건넌다. 정말 상전이 따로 없다.


너 이 글자 뭔지 모르지.
에효. 영어를 모르니 원.
이게 한자로 뭔 줄 알아?
쯧쯧. 잼민이니까 모


실은 나에게 잔소리하는 보다 초3동생 놀리는 게 더 참기 힘들었다. 무시하고 놀리고 울리고 3단 콤보가 이어지면 정신이 쏙 빠진다. 막내가 엄마의 사랑을 다 받으니 그런가 싶어 참다가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치고 만다.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어르고 달래고 당근과 채찍을 고루 쓰며 위기를 모면하며 스릴만점 여행을 즐겼다.


큰 딸은 예상했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잘 즐겼다. 힘든 데이투어도 마다하지 않고 잘 따라다니고 독특한 맛의 대만요리도 골고루 잘 먹었다. 나도 워낙 낯선 환경과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그런 면에서 큰 딸과 맞다. 엄마가 힘들면 센스 있게 막내를 돌보고 엄마의 취향을 기억했다가 디카페인 커피도 사 올 줄 아는 다 큰 딸이다. 막내는 언니와 엄마사이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무탈하게 잘 지냈고 즐거운 여행이 잘 마무리되었다.


기내에서 먹는 라면의 맛이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꼭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며 한 그릇씩 냠냠 먹는 두 소녀의 모습. 한국으로의 귀환을 준비하는 것일까. 익숙한 라면 냄새에 나도 모르게 "한입만!"을 외치고 말았다. 가족이 다 같이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성별에 따라 취향에 따라 삼삼오오 헤쳐 모여 떠나는 여행도 매력적이다 혼잣말을 하며 후루룩 라면을 씹어 넘긴다. 그리곤 생각한다. '다음엔 또 어딜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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