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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07. 2024

[속초]하나만 투어 : 동방의 별, 마음의 별

엄마넷 육아워크숍 (feat. 속초)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오복음 2장


새벽 공기, 애잔하게 빛나는 달


지난 주말, 친구들과 속초여행을 다녀왔. 금요일에 도착해 자고 다음날 새벽에 찾은 온천, 아침 하늘에 여태 발견하지 못했던 손톱만 한 달이 나를 맞아준다. 어스름 새벽빛에 푸른 하늘, 동터오는 붉은빛이 적당히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반짝이는 별을 찾아 동방박사가 모였던 것처럼 우리도 가느다랗게 빛나는 저 달빛을 따라 여기, 속초에 모인 걸까.



새해 아침, 뻔한 바람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을 누비던 옛 친구들은 누구라도 "모이자!"소집명령을 내리기만 하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후다닥 헤쳐 모인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행동만 할 뿐. 새해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이 즈음, 해 뜨는 마을, 동쪽으로의 여행을 한.



시원하게 온천욕을 마치고 마침 눈앞에 보이는 소나무 숲길을 휘적휘적 여유롭게 걷는다. 듬성듬성 키 큰 나무가 풋풋하고 상쾌한 공기를 내뿜는다. 멀리 보이는 수줍은 산자락이 겨울 풍경을 채우고, 코끝을 아리는 아침공기가 적당한 각성을 일으키며 한 해의 시작,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올해도 아무쪼록 모두
무탈했으면...
그리고
참 좋다.
이렇게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호젓하게 걷는 아침 산책길, 예전 같으면 올해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고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겠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저 모두 아무 탈없길 바랄 뿐,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이렇게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밖에, 아무 생각이 없다.



울산바위 작사, 순두부 작곡, 속초 예찬

울산바위의 선명한 자태

 

말갛게 해가 뜬 아침, 뜨끈한 온천물에 목욕재계를 하니 깨끗해진 몸이 한결 가볍다. 기분 좋게 속초의 명물, 순두부를 먹으러 간다. 그런데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술이다. 울산바위를 전면에 내세운 설악산의 자태, 컴퓨터로 조작한 것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에 "와~"소리가 절로 나온다.


순수한 순두부의 고소한 자태


뽀얀 국물, 몽글몽글 하얀 순두부, 고소함을 가득 품어 그 맛이 온전하고 풍부하다. 속초에 오면 늘 아침식사를 먹으러 이곳에 들른다. 변함없는 두부맛과 아삭한 오이무침, 쫄깃쫄깃 매콤 달달한 황태채무침, 멸치액젓 양념이 진해서 감칠맛이 끝내주는 비지찌개까지 그 조합이 과하지 않아 중독성이 있다.


푸른 하늘, 쪽빛 물결

청초호의 청초한 자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산책할 겸 근처 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청초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름만큼이나 청초한 자태에 기가 눌린다. 맑은 호수인 듯 드넓은 바다인 듯 깊은 푸른색이 한 겨울 시린 공기와 만나니 더욱 진한 쪽빛을 낸다. 삼삼오오 노니는 오리 떼, 때때로 활공하는 갈매기, 한 점 구름까지 어우러져 너 나 할 것 없이 아름답다.


청초호 산책 데크, 멀리 엑스포타워


엄마 넷, 사연 넷

일찍 결혼해서 20살이 넘는 아이 둘이 있는 안양댁, 뒤늦게 결혼해서 귀여운 유초등학생을 키우는 김포댁과 속초댁, 그리고 초. 중. 고 각각 하나씩 삼 남매를 키우는 나까지 엄마가 넷이다. 아이를 이미 다 키운 엄마나 이제 막 유치원에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입학한 아이를 키우는 늦깎이 엄마나 자식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한결같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맞는 거지?' 정답도 지름길도 없는 육아와 교육에 대한 각자의 경험과 조언, 충고, 잔소리와 타박이 어우러져 웃고 떠든다. 식사와 식사사이, 장소와 장소사이의 여백을 각자의 사연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시간을 꽉 채워간다.



아이 없이 모여 아이 이야기만 하는 아이러니

육아와 살림에 지쳐 이번에는 애들 없이 편하게 모이자고 했다. 우리끼리 쉬면서 그간 못한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그런데 결국 우린 어미였다. 쉬고 싶다 해놓고 그만 생각하자 해놓고 결국 아이들 얘기만 하고 있다.


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함을 느껴 아이교육에 더 정성을 쏟는 친구나 아이에게 필요한 자극과 경험을 주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시키는 친구나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은 부모의 열망은 모두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다양한 일들, 절망하고 좌절했던 순간들. 그러면서 웃고 다시 힘을 낸 보람이 있었던 기억을 꺼내 나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겨울밤도 깊어진다.




2024년, 각자의 빛으로 푸른 용이 꿈틀댄다.


밤새 교육,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이른 아침, 교통체증을 피해 얼른 짐을 싸 다시 집으로 향한다. 차를 타니, 새벽 공기에 잠시 멈추었던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서 다시 이어진다. 애 셋을 잘 키워 보겠다고 했던 몸짓과 시도들은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제 나는 나에 대한 공부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잘 살아야 내 아이도 잘 키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때때로 우린 부모역할, 엄마역할, 학부모의 역할에 매몰된 채, '괜찮은 나, 온전한 나'가 되는 일을 까마득히 잊곤 하니까.



각자의 별을 찾아가는 길

큰 딸, 1호는 올해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외국유학과 외고, 일반고 중 어디에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근처 일반고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올해 초부터 매달 한번, 가족이 모여 고민하고 생각하고 의견을 나눈 결과다. 이젠 딸의 별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갈고닦아 빛을 낼 차례이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별이라고 하면 각자의 빛나는 별을 찾아가는 것이 교육일 것이다. 저 멀리 어두워 보이는 하늘에서 내 아이만의 빛을 발견하고 길을 내어 그 빛을 찾아내 경배하는 동방박사와 같은 사람이 부모일 것이다.



A lot of mothers will do anything for their children, except let them be themselves.

많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 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Banksy-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아이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가 만들어준 빛, 누군가의 의한 빛은 그 유효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부모는 늘 관찰하고 지켜보다가 아이가 어느 순간 반짝하고 빛을 발하는 그 순간,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 이후는 아이 스스로 빛을 내도록 지지하고 기다려주고 길을 내어주는 일만 하면 되지않을까. 내 아이가 가진 빛이 푸른빛이든 붉은빛이든 작은 빛이든 큰 빛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을 비교하거나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빛이 충분히 빛나고 올바로 쓰일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고 스스로 갈고닦을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뿐이다. 내 아이의 빛이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될 수도 있고, 칠흑 같은 숲길에서 북두칠성처럼 길잡이가 될 수도 있고, 어두운 도시, 좁은 골목을 안전하게 비춰주는 가로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흐릿하고 아직은 빛을 발하지 않은 내 아이의 밝음을 귀하게 여기는 일, 스스로 갈고닦아 반짝이는 별이 되도록 기다리고 응원해 주는 일, 그 소중하고 귀한 일이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는 위대한 사건으로 연결됨을 기억하기로 한다. 다른 별들과 비교해서 더 빛나지 않는다고 더 빨리 빛이 나지 않는다고 성급해하고 불안해하지는 않나. 괜한 조급함에 내 아이의 빛을 가리고 있지는 않나 애태우며 걱정하는 어미들의 공연한 피로감에 쉼표를 던진다. 각자의 빛으로 꿈틀거리고 또 승천할 용띠해의 행운을 우리 용띠친구, 모두에게 빌어본다.


청초호앞. 꿈틀거리는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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