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요일 Dec 24. 2023

[타이페이]하나만 투어:대만은 매일 흐림

세 모녀. 타이베이 방랑기(3)

겨울에도 에어컨을 끄지 않는 나라.

대만의 겨울 기온은 10도 내외, 한국의 겨울이 추워서 도망 왔다. 근데 이게 웬걸, 이곳은 거의 매일 흐리다. 대만의  365일 중에 200일 넘게 비 오고 흐리다고 하니 속아도 제대로 속았다.


숙소에 들어왔다. 공기가 서늘하다. 에어컨이 가동 중, 밤이 되어 추워져서 에어컨을 끄려 하니 꺼지지 않는다.  알고 보니 여긴 습도가 너무 높아서 에어컨을 상시 켜두는 거라고. 좀 더 싼 방을 예약한다고 창문이 없는 방으로 예약했으니 더더욱 에어컨을 끄면 안 되는 거였다. 데이투어한다고 대형버스를 탔는데 여기도 마찬가지. 퍼붓는 빗속에 옷이 젖고 신발까지 축축해져 한기마저 든다. 그런데 차 안에 습기가 차면 앞이 안 보이니 에어컨은 또 풀가동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미리 사정을 말한다. 상황이 이러니 10도 이상의 날씨라도 늘 늘하고 춥다.


솔직히 흐린 날이 많아서 춥고 불편하긴 했다. 옷도 우산도 추가되니 짐도 부담이고, 목이 간질간질, 기침이 콜록콜록 건강도 살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습하고 칙칙한 날들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있었다. 그 숨은 비법과 지혜는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우산, 우비의 퀄리티가 ~

타이베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우산가게를 자주 볼 수 있다. 언뜻 봐도 우산의 종류도 많고 질도 좋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파는 우비는 약 4500원. 대만돈 100달러인데 질이 너무 좋다. 우리나라 길에서 흔히 보던 1~2천 원짜리 우비 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두툼한 방수천에 깔끔한 바느질, 튼튼한 재질에 모자에 까지 달린 야무진 디자인이다. 1호 언니가 급하게 사느라 색깔 선택에 실패했지만 품질엔 대만족이다. 가벼운 장바구니나 가방도 방수재질로 만들어진 제품이 많다. 습한 날씨에 최적화하기 위해 물건을 만들다보니 기술력도 디자인도 같이 동반 상승한게 아닐까.

우산전문가게
튼튼한 재질의 100대만달러 우비


커피숍보다 찻집이 많은 나라

대만은 버블티가 유명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버블'이 특별한 게 아니라 '티'가 특별했다. 어딜 가나 차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차의 종류도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텀블러나 텀블러캐리어, 텀블러 가방을 들고 다니고 차와 관련된 소품들도 많다. 그리고 버블티, 차를 파는 가게가 커피숍보다 훨씬 자주 눈에 띈다. 날이 추워서 버블티 먹을 생각을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따뜻한 차를 마시면 될 일이었다.


유난히도 거리에 편의점이 많다. 그런데 과자의 종류도, 간식의 종류도 적다. 몇 개 있는 건 일본이나 한국 상품이 대부분이다. 왜 이렇게 편의점 상품이 부실할까 궁금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늘 차를 마시니 간식생각이 덜 나는 게 아닐까. 대신에 홍차관련된 음료는 정말 많았다. 버블티를 파는 체인점도 너무 많아서 데이투어가이드님께서 추천해 주신 탑 10에서 골라 마셔야 할 정도였다

대만 버블티 순위표
앗. 1위 버블티 발견

늘 차를 마시니 공항에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는 건 당연한 걸까. 뜨겁고 차고 따뜻한 물, 온도도 다양하게 조절되는 전문가 포스가 느껴지는 정수기가 눈에 들어온다. 대만사람들의 차사랑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건강도 지키고 다이어트도 하는 일석이조가 된 셈. 정말 뚱뚱한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공항내의 정수기


음울한 분위기의 청일점, 초록 나무

비가 부슬부슬 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가로수가 보인다. 그런데 가로수의 모습이 다르다. 정글처럼 울창하고 골목 끝에 있 공원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많다. 길가에 보이는 건물은 색이 바래고 낡았는데 창가에 화분이 놓여있어 칙칙한 분위기를 덜어준다. 거리의 상점 앞에도 늘 싱그러운 식물들이 함께 자리하고 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무들은 그 색이 깊고 풍성하다. 곳곳에서 보이는 초록의 식물은 음울한 날씨에 싱그러움을 더하고 오래된 건물에 신비스러움을 더해 다. 습한 기운을 나무가 다 빨아들이고 아름다운 경치와 인테리어를 완성케하니 일석이조가 되었다.



뿌옇게 흐린 날, 여행하기 딱 좋아.

물안개가 자욱한 허우통 마을

비가 와서 옷이 다 젖고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이런 날씨 속에서 매일을 살아내는 사람들 속에서

햇볕 쨍한 날에만 여행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다른 곳에 살던 내가

평범하게 사는 여행지의 일상 속에 왔다고 해서 평소와는 다른 맑은 날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이 있는 그대로

그들이 사는 그대로

있는 듯 없는 듯 왔다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뿌연 안갯속에서

흩뿌리는 빗속에서

처벅처벅 질퍽이는 땅을 밟으며

나도 이런 일상을 경험하게 되어 좋다고 생각한다.


습해도

흐려도

음울해도

나름 괜찮은데~


꺅 소리 지르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먹거리를 씹으며 거리를 휘젓고

금테가 번쩍이는 선글라스까지 낀

이물스러운 움직임으로

누군가의 일상을 해치지 않아 좋다.


조용히 왔다 가는

옅은 존재감으로

여행자가 생활자와 분리되지 않게

슬그머니 스쳐 지나기기.


흐린 겨울하늘에 시선 한번 힐끗,

따스한 찻잔에 시린 손을 덮어본다.

쓰고 텁텁한 우롱차 한 모금 목구멍에 흘려놓고는

몸을 데우는 잠깐의 시간.


여행이라는 시간이

현재라는 시간 위에 겹쳐지니

온전하게 이곳에 스며들고 있구나.

섣부른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도 흐려서 참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페이]하나만 투어:길에서 (대만을) 주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