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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5. 2021

오렌지를 본 게 얼마나 오랜 지...

결정장애 인테리어 도전기

 이사를 간다. 같은 동네서 평수만 조금 늘려간다. 이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부동산 정책이 얼었다 풀렸다 하는 통에 내 마음도 조였다 풀렸다했다. 웬만한 사람들이 만지는 돈 중에 아마도 집값이 가장 클 것이다. 평생 가야 만지기 힘든 큰돈이 묶였다 풀렸다 하니 돈의 'ㄷ'도 모르는 나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가게 되었고 몇 푼이라도 아껴본다고 내 손으로 인테리어도 하게 될 위기에 처해진 .


인터넷에 '인테리어'를 검색하니 넘치는 자료에 질리고 범접할 수 없는 전문용어에 또 질린다. 점점 더 '아무것도 하기 싫다. 격렬히 더 하기 싫다'를 되내었지만 '조금이라도 아껴보자'를 마음에 새기며 도배와 주방만 힘을 주어 새 단장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도배를 하려니 방의 색지부터 골라야 하는데 이때부터 결정장애가 온다. 먼저 산 가구와 분위기, 용도와 맞추어 생각하려니 머리가 아파온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까 하고 이케*의 쇼룸을 찾아간다.

모던한 오렌지

마침 오렌지 벽지가 마음에 들어 찰칵! 찍어 저장해둔다. 안방은 편하고 조용히 쉴 수 있게 꾸미고 싶어 과감하게 진한 원색톤에 도전해봐야지 다짐한다. 드디어 도배를 하는 사장님과의 면담, 미리 찍어둔 사진과 가장 비슷한 오렌지색을 고르고 기분이 좋다. 며칠 후, 도배를 마친 방을 기대에 차서 확인한다.

애매한 오렌지

'헉! 그런데 그 색이 아니다. 뭔가 조화가 안된다. 어쩌지...'역시 색을 보는 안목은 따로 있다. 이케*쇼룸은 우리 집이 될 수는 없었나. 다시 해달라고 할까. 어차피 짐이 들어오면 가려질 벽을 두고 며칠간 고민한다. 그리고 도배 사장님께 전화한다.

"사장님, 죄송한데요. 안방 벽지가 제가 원하던 색이 아니라서요. 다시 베이지로 바를 수 있을까요?" 용기 내 말한다. 흔쾌히 벽지값만 받고 다시 해주신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몇 시간 후, 완성된 방을 확인한다.

밋밋한 베이지

'아. 이번엔 너무 평범하다. 재미없고 지루한 방이 됐네. 오렌지는 너무 튀고 베이지는 너무 무난하다.' 짜장은 느끼하고 짬뽕은 너무 매워서 고민하는 그 맥락과 꼭 닮았다. 짜장, 짬뽕이야 뭐라도 하나 먹고 치우면 되는데, 벽지는 오래 두고 볼 건데... 말도 안 되는 선택 장애가 인테리어 하는 내내 나를 괴롭힌다.


올 한 해는 일 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관을 가서 그림을 보고 글도 쓰고 한터라 나름 미적 감각이 조금 나아졌으려나 했는데 택도 없는 소리였다. 벽지, 싱크, 몰딩, 필름 하다못해 화장실 줄눈시공하는 데도 계속 색깔을 선택해야 한다는 데. 선택할 때마다 도무지 결정을 못하겠다. 남편이나 애들한테 물어보면 뭐든 괜찮다 하고. 나는 색이 단지 벽지뿐 아니라 가구와 분위기, 조명까지 어우러져 공간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에 결정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이쯤에서 인테리어라는 것은 사뭇 대단한 신의 영역임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벽지 색깔을 고른다. "나는 블루톤!"1호가 말한다. 아들 2호는 "그레이", 공주 취향 막내는 "엄마 나는 핑크랑 구름" 한치의 고민도 없이 원하는 색을 말한다. 그럼 나는? '오렌지였다. 정말 오랜만에 반짝반짝 쨍한 원색인 오렌지색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싶었는데. 결국 가장 무난한 베이지가 되버리고 말았네.'


뭐가 좋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나의 선호보다는 주변 것들과의 조화에 초점을 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내 선택은 갈피를 못잡게 된걸까. 정확하게 자기의 색을 밝히고 그것에 맞춰 다른 것들을 조율하는 아이들의 심플함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애매한 오렌지색보다 무난한 베이지가 더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내돈 내산 좌충우돌 인테리어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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