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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천개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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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Dec 28. 2023

김떡순에 얽힌 스토리텔링

B.T.F. 청춘 망년회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아침부터 다름이 아니라 제 꿈에 여러분이 나왔어요 ㅋㅋㅋ 미국유나까지 모두요!



지우가 카톡에 올린 이 한마디에 제자들과 함께 하는 모임 B.T.F ( Book Talk Friends)의 망년회가 성사되었다. 두부김밥과 녹차라테까지 출연했던 엉뚱한 꿈의 서사가 우리의 메뉴까지 정해버리고  저녁, 꿈이 아니라 실제로 우린 만났다.


김밥출격준비 완료


작년 여름, 책을 읽는 모임은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쭉~ 우린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는 것 같다. 예방주사를 맞듯이, 우린 서로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서로의 근황을 짚어보고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일상에 푹 빠져 다.



어서 와. 김밥말자!

지우의 꿈에 나온 메뉴, 김밥을 싸려고 재료를 준비했다. 야채 썰고 밥 안치고 잠깐 누웠다가 프라이팬에 재료를 볶고 준비한 뒤, 마지막으로 허리를 보온매트에 지진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파티도 있는 법, 노는데 이리 진심인데 나이 먹고 몸 아픈 게 때론 서글프기도 하다. 그래도 이 정도니 얼마나 다행인가. 밖에 나가면 춥고 돈도 많이 드니 여차저차해서 우리 집으로 20대 청춘 5명을 초대한 터였다. 김밥은 30줄 쌀 계산을 하고 준비했다.  예상했겠지만 방문자들이 김밥을 싸는 셀프서비스 시스템. 띵동! 모임을 소집한 지우가 먼저 왔다. 그간 어찌 살았는지 백다방 직원을 할 만한지 근황을 먼저 묻는다. 그리고 김밥말기 바통(김발)을 넘긴다. 정해진 방법은 없다. 느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둘둘 말아 김밥을 쌓아 올리면 된다. 나는 분식친구, 떡볶이준비한다. 그러는 사이 회원들이 한 명씩 쏙쏙 도착한다.


우리의 연말파티 출연자들




떡볶이와 세월을 함께 씹는 맛.

한창 코로나가 유행일 때 같이 책을 읽었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졸업도 하고 일자리도 잡고 이젠 제법 어른티가 난다. 왕선임 제자는 2012년 중2 때 만났으니 같이 얼굴 본 세월이 어느새 10년이 넘은 셈. 안 보면 궁금하고 때가 되면 생각나는 그런 인연, 게다가 고맙게도 20대의 생각과 정서를 나에게 수혈해 주며 40대, 노땅인 나하고도 놀아주는 참 괜찮은 아이들이다. 석환이와 유나는 일본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서 바로 오고 주연이는 학교 마치고 합류, 마지막으로 직장인 병호까지 도착해서 완전체가 되었다.


성탄절에 뭘 했는지, 연애생활은 잘 되어가고 있는지 근황토크가 이어지고 떡볶이에 순대, 김밥을 먹으며 그간 세월도 함께 씹는다.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을 이기는 데는 음식만 한 것이 없다. 별것 아닌 분식에도 아이들은 맛있다며 잘 먹어준다.




다국적 디저트타임, 혼돈의 현실자각 타임

일본, 대만서 공수한 다국적 디저트 셋팅

나는 대만서 공수해 온 누가 크래커와 펑리수를 꺼내놓고 석환이는 일본서 사온 젤리와 떡을 놓는다. 따끈따끈한 여행이야기가 무르익어가고 세계각국의 먹을 것들이 끊임없이 리필된다. 캔맥주와 우롱차도 국경을 넘어 식탁 위에 놓이고 주고받는 술잔, 찻잔이 비워지며 우리의 이야기도 깊어진다.


직장과 결혼이야기가 이어지고 육아를 하며 직장 생활하기가 진정 어려운데 어찌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푸념 섞인 대화가 오고 간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도 없는 무거운 주제 때문인지 현실 상황에 대한 답답함 때문인지 모를 이유로 우린 연거푸 잔을 비우고 있었다.


서로 다른 매체를 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알고리즘에 따라 더욱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리고 대화하기가 힘들어진다. 청년들은 청년대로 취업하기 힘들어 숨고만 싶고 노인들은 노인들 데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한다. 우리가 추앙하는 사람들이나 유명 배우, 유투버는 결국 불확실한 시대에 불안함을 잠재워줄 자신감, 확신이라는 콘텐츠를 팔거나 좀 더 강한 자극으로 현실의 고통을 회피할 수 있는 콘텐츠를 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와중에 SNS 속의 화려한 셀카들은 자신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쓸쓸한 모습에 가면으로 씌우고 서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우린 우리의 모습을 직면하기보다는 멀어지며 헛헛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걱정스러운 이야기도 나눈. 이러저러한  어려운 현실의 팍팍함을 말할수록 겨울밤의 냉기는 우리도 모르게 차츰 뜨거워진다.


스스로 만드는 자아신화, 스토리텔링

2년 전 <연금술사>를 읽고 설익은 우리만의 '자아신화 (personal legend)'를 나누었던 그날이 생각난다. 그때 만든 신화는 지금도 계속 수정 보완되며 진행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쌓고 최종목적지인 피라미드에 다다르기 위해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고 신화를 구성중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초라하게 보이고 엉성해 보여도 자신 인생여정을 그럴듯하게 스토리로 엮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이다. 내 인생을 스토리텔링하는 작가이며 감독, 주연배우도 나 자신이니까. 내 인생이 그럴듯해서 스토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나의 인생의 조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럴듯한 나만의 신화와 대본, 스토리를 엮어 만들어내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하고 업데잇하며 각자 인생의 스토리텔러가 된다. 


서로 다른 콘텐츠로, 서로 다른 세계에 갇혀 사니,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결국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고 주인공으로 만들 사람도 나다. 인싸와 인플루엔서가 주류인 세상에 늘 구경꾼이었던 나를 내 인생에서 만큼은 중심에 두고 주인공으로 세워야 하지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길,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조연의 삶은 그만하고 나를 위해 스토리를 만들고 구성하고 환경을 세팅하고 중요한 순간의 선택을 하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나지막하게 말해주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박물관이라는 칭송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루브르가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서 그렇지 않겠냐고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략)

 루브르 박물관은 자신들이 어떻게 전시를 하고 어떻게 복원을 해야 그들이 소장한 작품들이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왜 이 작품이 이곳에 걸려야 하고, 이 작품 옆에는 어떤 작품이 전시되어야 가장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조화로운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최고의 큐레이팅을 선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큐레이팅 능력이야말로, 루브르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칭송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24~26쪽


 엉뚱한 꿈 이야기로 소집된 청년들과의 망년회는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훈화말씀으로 끝나버렸지만 누구도 자기 인생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 한 가지 알맹이는 남았기를 바란다. 엉뚱한 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김밥하나로 이어져 현실 속 만남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자아신화가 실현되고 만들어낼 다음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그래서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쭉~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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