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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l 22. 2022

'긴긴밤' 읽고 긴긴 프로젝트(1화)

슬로리딩 ×학급 프로젝트

 슬로리딩의 재미에 빠지게 된 이후로 학급에서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책 읽기와 삶을 연결 짓고 상상하고 체험하는 슬로리딩의 즐거움을 꼭 나누고 싶었던 것. 그리고 올해 하나하나 너무 이쁜 아이들을 만났다. 왠지 슬로리딩을 같이 하면 너무 잘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미션을 슬그머니 건넸다. 믿고 따라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한 학기의 마지막 달인 7월에 이르러 야심 차게 <긴긴밤>을 같이 읽고 긴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과감하게 제안했다. 반신반의하던 아이들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천천히 내가 이끄는 데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생각나는 활동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레 약 3주에 걸쳐 진행해 본다.

 그러나 쓸 수 있는 예산은 피구대회 1등을 하고 얻은 지원금 10만원 뿐. 크다고 하면 큰돈이지만 뛰는 물가에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먹을 만한 간식을 하나씩이라도 사서 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긴긴밤' 읽고 긴 김밥을 만들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학기초 우리 반 마스코트로 <윤여사 김밥집>도 오픈하기로 약속도 했으니 일석이조가 될 수도.

https://brunch.co.kr/@blume957q7n/65

그냥 하면 밋밋하니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션으로 '긴 김밥 만들기'를 하고 중간 미션을 완료할 때마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를 하나씩  게임 형식으로 재미를 더했다. 조별로 책을 구해 인증사진단톡방에 올리면 김밥용 김을 획득, 독서감상문을 다 쓰면 김밥에 빠질 수 없는 단무지 획득, '긴긴밤 퀴즈'의 문제를 출제하면 맛살 획득, '긴긴밤 체육대회'에서 열심히 참여하면 햄을 얻게 되는 것이다. 중간중간 특별 미션을 완료하면 보너스로 컵라면도 주기로 했다. 아이들도 슬금슬금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긴 김밥 재료 획득 상황표
일단 책을 구해야지~

첫 주 미션은 각자 책을 구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돈도 들기도 하니 부모님들께도 같이 책을 구해주십사 문자를 먼저 보낸다. 며칠 후, 한 두 팀씩 아롱이다롱이 모여 찍은 인증사진이 단톡방에 올라온다. 먼저 올린 팀부터 순서대로 재료를 획득 상황을 알리는 도장판에 스티커를 붙히거나 도장을 찍어준다. "야. 우리도 오늘 찍자. 현* 너 책 가져왔어?" 서로 챙기고 잔소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모든 아이들이 책을 구해 사진을 찍고 김밥김을 획득한다. 단계까지 오면 일단 밥에 김은 싸서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책 읽기 준비 완료! 책 읽기가 게임이 되고 모둠활동이 되니 시간은 오래 걸려도 서로서로 챙겨주며 모두 책은 같은 책을 읽는다는 무거운 미션이 은근슬쩍 부담 없는 놀이가 되어 시작된다.

아롱이 다롱이 이쁜 '책구함' 인증샷
<긴긴밤> 긴긴 답 : 질문으로 이어지는 책 읽기

두 번째 주는 아이들은 구한 책으로 각자 책을 읽는다. 학기말엔 교과 수업 대신에 다양한 체험과 교육을 한다. 자투리 시간에 읽을 것을 강조하고 아침 조회 시간마다 책의 한 페이지 정도를 읽어주고 관련된 질문을 한다. 아이들은 질문에 답을 생각해 포스트잇에 조별로 써붙여 긴~답을 만든다. 이름하여 '긴긴밤 긴긴답'프로젝트.

악몽을 꾼 적 있나요? 어떤 악몽을 꾸었나요? 숙면을 취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가 있나요? 그때는 언제인가요?

친구들이 적은 답을 읽고 잘 적은 혹은 인상적인 답을 쓴 친구들에겐 칭찬 스티커를 서로 붙여준다. 가장 많은 스터커를 모은 모둠은 김밥에 넣을 치즈를 덤으로 얻는다.

치쿠와 윔보처럼 알을 품는 다면 어떨까?

긴 긴답의 세 번째 질문은 그 주의 마지막 날 금요일에 말한다. '치쿠와 윔보처럼 알을 품는 다면 어떨까? 나도 알을 품는 다면 치쿠처럼 잘 품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답을  적었을 때쯤, 달걀을 하나씩 나누어준다. "샘이 알을 하나씩 줄게. 근데 이 알을 받은 후에 세 가지 미션이 있어. 첫째는 이 알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 두 번째 미션은 오늘 하루는 이 알을 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집까지 무사히 가져가는 . 어딜 가든 꼭 가져가야 하고 집에 무사히 도착하면 인증샷을 찍어 단톡에 남겨줘야해. 그리고 세 번째로 부모님께 달걀을 이용해 음식을 한 가지 해드리기. 이 알을 품었던 느낌까지  전해드리면 더 좋겠지. 불을 써서 요리하기 힘들면 달걀을 그냥 드려도 돼요. 그리고 행여나 집에 가기 전에 알을 깨뜨리면 칠판에 꼭 사망신고를 해주어야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네~!"라고 호기심 반, 신기함 반이 섞인 얼굴로 대답한다. 그리고 바로 10분 후, 첫 번째 사망란이 생겼다.


사망신고 : 2022년 7월 15일 금요일 09시 20분 이*영 님의 아들 개복치가 사망했습니다.


혹시나 다른 애들도 달걀을 깨서 교실이 엉망이 되진 않았나 하는 걱정에 교실을 쉬는 시간마다 들락거린다.

"혹시 사망란 있어?"

"아뇨. 없어요."

휴, 다행이다. 잠시 맘 놓고 3,4 교시를 보내고 점심시간. 안타깝게도 4개의 사망란 신고가 있다.

교실을 메운 사망신고

애지중지 알을 소중히 다루었던 아이들도 있었던 반면 장난스레 남의 달걀을 건드렸던 아이들도 있었나 보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른 알들의 무사귀환을 소망하며 서둘러 종례를 하고 아이들을 귀가시킨다. 몇 시간 후, 사망한 달걀, 무사히 도착한 달걀, 요리로 환생한 달걀 소식이 속속 들어온다.

 이쁘게 꾸민 달걀, 맛있는 요리가 된 달걀들의 모습이 귀엽다.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새로운 주에 다시 묻는다. "애들아, 알을 품고 집에 도착해서 요리로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을 때, 혹은 알을 깨뜨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니? 느낌과 생각을 적어서 포스트잇에 붙여줄래?" 마지막 긴긴답 미션을 제시한다. 긴긴밤 긴긴답 포스트잇이 자꾸만 길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도 경험도 자꾸만 길어진다.


다음 화에서는 책 읽기와 게임, 체육대회, 퀴즈, 긴 김밥 싸기로 이어지는 긴긴밤 프로젝트가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https://brunch.co.kr/@blume957q7n/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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