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옷, 어울리는 옷을 찾으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산다. 체형이 보통 여자들보다 큰 편이라 맞는 옷을 찾는 건 쉽지 않은 데, 어울리기까지 하면, 꺅!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희열을 느낀다. 입어보고 만져보고 거울에 비춰보고 편하면 오케다. 혹시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아이쇼핑은 필수다. 내게 맞는 브랜드는 정해져 있으니들러서 최근 입고된 신상은 눈으로만보고, 세일 중인 상품은 보물찾기 하듯 딱 맞는 옷을 발굴해 낸다.명품은 사고야 싶지만 사이즈도 없고 가격도 사악해서 패스! 그래도 백화점에갈 때면유명매장의 쇼윈도로 한창 유행하는 패턴이나 트렌드는 꼭 체크해서 눈에 담아둔다.
패션은 모방에서부터
어릴 적엔 헌책방에서 과월호패션잡지를 종종 샀다. 스타일이 멋지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모델사진을 보면 오려서 단단한 골판지에 붙여 겉을 장식하고 아스테이지(책 싸는 비닐)를 덮어씌워 내구성과 방수기능을 보강한 필통을 만들었다. 교과서나 책의 표지도 마찬가지, 고이 모셔둔 사진을 앞뒤로 붙여 비닐로 덮어 딱 맞게 재단해서 나만의 표지를 만들었다. 그런 책이 왠지 더 공부도 잘 되는 느낌? 성적까지 오르는 건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책받침스타는 소녀들의 로망이었다. 소피마르소, 브룩쉴즈, 사론스톤 등등 그녀들의 패션이나 헤어, 메이크업까지 추종자들이 생기곤 했다. 늘 같은 교복만 입고 다녔던 학창 시절을 지나 별스런 유행이란 유행은 다 좇아하면서 즐거움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옷은날개였고 스타일도 변신시킬 수 있는 마법봉 같았다.
80~90년대 하이틴 스타. 브룩쉴즈(좌), 소피마르소(우)
그림 한 점을 완성하듯 옷 한 벌을골라 입는다.
가끔 전시회에 가면 우리 집 한편에 두고 싶은 그림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엄두도 못 낸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찍고 머리에기억해 두는 것이 최선일뿐.주위에도 예술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옷은 일상 속의 그림을 그 보다 저렴하게 완성해 낼 수 있다. 격식 있는 졸업식, 결혼식에 갈 때는 바로크 시대 귀족처럼 블랙과 화이트로 우아한 하운드패턴의 트위드재킷을 입고 우아함을 더해줄 진주귀걸이를 한다. 초저녁 동네친구 호출받고 맥주 한잔 하러 갈 때는 검은색 맨투맨 티셔츠에 편한 점퍼를 툭 걸친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 오전, 미술관에 갈 때는 블루, 화이트 스트라이프셔츠에 쨍한 초록 카디건그리고 편한 청바지를 입는다. 옷은 이렇게 예술적 감각을 내 멋대로 표출할 자유를 준다.
장소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입는 옷의 스타일, 색깔, 패턴, 액세서리에도 변화를 주고 전체적인 조화를 맞춰 신발과 가방도 매칭해야 비로소 완벽한 준비가 끝난다. 연예인도 아니고 모델도 아니지만 나에게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고 추위와 더위에 맞게 입는 생리적 필요 이상의 뭔가가 있다. 맞는 옷, 어울리는 옷을 입을 때면 기분도 컨디션도 업되지만 뭔가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을 걸치면 입는 내내 다운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 것, 패션은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일상적이고 소박한 예술의 표현이고 향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