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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10. 2024

슬픈 기억을 놓아버리는 것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쉼을 잊은 그대에게

방학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면 된다. 그런데 나는 쉬고 있으나 쉬지 못하고 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와 할까 말까 하는 주저함, 작고 소소한 걱정에 늘 갇혀 지낸다. 벗어나려 하지만 뭔가를 자꾸 생각하고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결국 아주 피곤해진다. 멀쩡했던 입술이 부르트고 목뒤의 찌릿함이 오고서야 뭔가 잘못됨을 알았다. 나의 발목을 잡는 건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나의 미련함 때문이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는지, 혹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선의 일화가 있다. 탄잔이라는 선승이 에키도라는 승려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 뒤 몹시 진흙탕으로 변한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마을 근처까지 오자 그들은 길을 건너려는 젊은 여인과 마주쳤다. 그런데 진흙탕이 너무 깊어서 입고 있는 비단 기모노가 더러워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탄잔은 곧바로 그녀를 등에 업고 길 반대편으로 데려다주었다.
 그 후 두 수도승은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계속했다. 다섯 시간 뒤, 그날 밤 머물게 될 절이 보일 때쯤 에키도가 마침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 처녀를 등에 업고 길을 건너다 주었는가? 우리 수행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가?”
 탄잔이 말했다.
“나는 몇 시간 전에 그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녀를 업고 있는가?”

출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저/류시화 역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잡으려고 잡아두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다. 어떤 감정과 번민에 사로잡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때는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아야 한다. 말하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되고 작아지고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과거의 내 행동이 마땅치 못해 연연하게 되는 것은 실로 많은 것에 영향을 미쳐 복잡하게 만들어버리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복잡하게 보지도, 고민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뱅크시의 작품
One of the simplest ways
to stay happy is...
Letting go of the things
 that make you sad.

행복을 찾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Banksy-


 미련한 짓인 줄 알면서도 우린 과거의 슬픈 기억과 상처를 자주 씹는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까. 뱅크시의 작품을 보러 갔다가 허를 찌르는 글귀 앞에 멈추어 섰다. 슬프게 하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었다.


과거의 기억, 슬픔이라는 생각에 대책 없이 잡혀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내가 잡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받은 상처에 몰입해 다른 것들을 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그것에 매몰되겠다고 스스로 고통받기를 자청한 꼴이었다.



내 슬픔을 잡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

슬픔과 고통을 려놓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내가 그 과거를 잡고 있다고 인정하고 자각하면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이 상태에서는 내가 뭔가에 잡혀있어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동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스스로를 더 깊은 슬픔 속으로 자신을 끌고 들어가곤 한다. 어리석은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힘들다고 해야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자신의 고통을 증명해 보여야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타인의 관심이 주는 달콤함에 매달리다가는 자기 연민의 늪에 갇혀버리기 쉽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걱정과 번민의 끈은 내가 스스로 놓아야 한다. 거짓된 연민의 끈이 끊긴 후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끊어 내려할수록 갇힌다면 나가야 한다.

이도 저도 안돼서 미치겠다면 컵라면이라도 사러 나가든지, 음식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가야 한다. 얼얼한 바깥공기에, 쿰쿰한 쓰레기 냄새에 확 정신이 깨어 그 망할 걱정의 끈을 잠시라도 놓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악뮤(악동뮤지션)의 오빠 (찬혁)가 동생(수현)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괜히 천재 뮤지션이 아니다. 정말.


그냥 매일
딱 5분씩만
산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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