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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an 17. 2024

태어났으니 사는 거다.

특별한 의미부여의 과부하


바쁜 마음, 지친 몸

몸이 예전같지 않다. 허리디스크가 나아지니 목디스크 통증이 시작되었다. 허리가 안 좋아 누워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팔목도 시큰거린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걱정되고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잠을  못 자는 예민함까지.


나는 왜, 뭣 때문에 이렇게 생각이 많지?



그냥 쉽게 잊고, 피식 웃어넘기고, 흘러가는 데로 되는대로 살면 되는데 나는 왜 심각하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민이 많고 복잡할까. 심플하지 않은 내가 답답한 요즘이다. 뭐든 의미를 따지고 각성한 상태로 온갖 불완전한 것들을 신경을 곤두세워 반응하곤 한다. 안 되는 것도 부족한 것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의지로 노력으로 기어코 온전하게 만들어내고야 만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법이 없고 허투루 시간을 보내질 않으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모하고 신경 쓰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다. 겉모습은 평화로운데 내 안은 전쟁터라면 알맞은 비유가 될까.


눈이 떠지면 시간을 확인하고 아침기도를 한다. 새로운 하루를 주심에 감사. 흑마늘 한 점과 냉온수를 한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시작한 미술사책을 읽을 읽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라디오 앱을 켠다. EBS 모닝스페셜은 오랜 친구이자 영어 선생님이다. 아이들을 깨워 같이 밥을 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밥 먹고 나가는 건 나의 본능이 시키는 일이라 거스르면 몸이 무겁고 힘들다. 이번 달까지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넘기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방학이라 혼자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애들 밥 챙기고 공부도 봐줘야 하고 병원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 할 일은 많고 마음이 급하니 엉뚱한 순간에 만만한 애들한테 파르르 화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

휘리릭 휴대폰을 넘기는 중에 도끼처럼 심장을 때리는 문구를 만났다.


여러분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태어날 때 '이렇게 살아라'
의미가 주어지나요? 없지요.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겁니다.


유튜브 희망세상만들기 법정스님의 말씀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걸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남보다 잘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법정스님-




남들보다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원고는 몇 일째 제자리고, 특별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에게 화내고 다그쳤고, 더 좋은 모임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몇 날 며칠 동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모임을 만들까?'고민했었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에 매일 종종걸음 치며 뛰어다녔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심, 남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어쩌다 태어난 인생, 평범한 내 삶에 특별한 이유도 의미도 없을 텐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소박한 자유로움을 잊고 괜한 욕심에 나를 속박하고 다그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요.



지금도 충분히 좋아요.
더 이상 뭘 더하지 않아도 돼요.



분명히 그런 말을 듣고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지난 6년간 소중히 키워 온 독서모임의 새로운 운영진으로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자 불안해졌다. 모임을 계속하고 싶었던 다른 멤버들은 고심 끝에 리더 없이 모임을 운영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시간 잘 운영된 온 모임이 무너지고 힘이 빠져 초라해질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걱정하지 말고 계속 쓰라는 말

목디스크를 치료하느라고 우연히 가게 된 한의원의 젊은 여의사가 문진표를 살펴보며 말한다.


의사) 혹시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으신 편이죠? 겉으론 안 그러신대.

나)  네..
 갑자기 뭔가 화가 올라오거나 생각이 차오르면 쏟아내야 해요. 그래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안에 감정을 쌓아두긴 힘드니. 그렇게 계속 쓰다보니
손목도 안 좋아진 것 같고요.

의사) 걱정 마세요. 손목은 제가 안 아프게 치료해 드릴 테니 글은 계속 쓰셔야죠.



왠지 그 말을 믿고 싶다. 상술일지는 몰라도 치료는 열심히 해줄 테니 계속 글을 쓰라는 말이 내겐 너무 큰 응원의 말처럼 들린다. 특별하지 않은 내가 특별해지고 싶은 내 안의 욕구를 잠재우는 자장가이며 토닥임 같은 의식이 쓰는 것일까. 계속 쓰라는 의사의 말에 마음이 편해진다. 에라, 모르겠다. 다 내려놓고 또다시 누워 글을 쓴다. 언제가 내 안의 긴장이 풀리고 욕심과 불안함이 사라져서 편안해지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들풀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바람을 노래하게 될까. 이슬처럼 촉촉한 마음으로 생명을 이야기할까. 에잇~아무거나 돼도 좋겠다. 이효리의 말처럼.



 아무거나라도 되는 게 어디냐.
뭐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인생 뭐 있나. 힘빼고 살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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