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쉼이란, 먹고사는 일에서 잠시 멀어져 주어진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새로운 것을 즐기는 것. 하지만, 사람마다 쉬는 방법도 쉬고 싶은 장소도 다르다. 난감할 때는 몸은 쉬고 있는데 머리가 끊임없이 움직일때나 몸은 계속 움직이는데 머리는 잡념이 없이 몰입한 상태, 아니면 몸과 마음, 모두 멈추고 숨만 쉬고 있다면 진정한 휴식일까. 우리에게진정한 휴식, 쉼이란 무엇일까.
쇼펜하우어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지루함 사이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한다. 일하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할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무료함을 없애고 싶은 마음 사이에 쉼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진폭은 있겠지만, 결국 고통과 지루함을 오가는 움직임 사이에 있다. (중략) 외적으로는 빈곤과 결핍은 고통을 낳고, 안전과 과잉은 지루함을 낳는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쇼펜하우어, 39쪽
지루함의 원천인 내면의 공허함은 계속해서 외부의 자극을 자극하도록정신과 마음을 움직인다. 이때 어떤 자극을 선택하는지는 그리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다. 사교나 대화방식, 여러 문지기와 창가에 선 구경꾼처럼 시간이나 때우는 저급한 일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온갖 사회 활동, 오락, 유흥, 사치를 갈망하는 일은 시간 낭비이자 비참해지는 길이다. 이런 비참함을 막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내면의 풍요 즉 정신의 풍요다. 정신이 풍요로워지면 지루함이 설 자리가 없다고그는 말한다.
누군가는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게 쉼이고 누군가는 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기도한다. 누군가는 조용한 방에 좋아하는 음악,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우리가 쉽게 하는 사회활동, 오락, 유흥이 시간낭비라면 정신적 풍요를 채우는 여가란 무엇일까.
정신적으로 가진 것이 많을수록 외부에서 필요한 게 적고, 그렇게 생긴 시간적 여유 속에서 온전히 자신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정신이 탁월한 자는 그리 사교적이지 않다.
자급자족하는 즐거움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줘야 한다고. 가장 좋은 것이 많을수록, 향락의 원천을 자신 안에서 찾을수록 행복해진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급자족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은 독일어로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이의 것'과 일맥상통한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외적인 것에 맞춘 삶보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내는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라는뜻일까.
순도 100퍼센트 휴식은 어디에?
포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박상영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꺼내 들었다. 여행이 휴식이라는 그의 생각은 현실에서는 진정 즐기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지만 그는 새로운 장소와 사람,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어색하지만 또 다른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인식하고 감사하기에 이른다. 가파도라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경험, 늘 함께 하던 친구들의 재발견을 통해 그는 더욱 온전한 자신이 되어간다.
나에게 휴식은
직장, 학교, 가족 등 버거운 책임과 부담의 관계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외부의 통제나 압력,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식 없이 순도 100퍼센트 나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쉼이고 휴식이다.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있으면 느낀 그대로 펑펑 울고 활짝 웃을 수 있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 학교 앞 문방구, 떡볶이집을 찾아가면 그 어떤 때보다 편안하게 몸이 기억하고 움직이곤 한다. 울퉁불퉁 감정이 튀어나오던 사춘기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느새 말랑말랑한 감성이 되살아나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흐물흐물 부드러워진다. 스르르 잠시 눈을 감아도 좋을 만큼.
나는 휴식한다. 낯선 거리에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눈에 담을 때, 길을 잃어 복잡한 골목을 헤메다 마음씨 좋은 행인을 만나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갔을 때, 그 어떤 눈치도 볼 필요도 없고 주렁주렁 메달린 책임에서 벗어나 내 취향대로 아이스크림의 맛을 정할 때.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한 나를 만난다. 세상의 역할과 책임에 얽매임 없는 온전한 나를 만나는 여행은 적어도 나에게는 쉼이고 휴식이 맞다. 익숙한 곳에서의 편안한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고 낯선 곳에서 설렘 가득한 모습도 나의 일부분이다. 일상과 여행, 편안함과 설렘을 오가는 것,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은 스스로 만족하는 자급자족형 즐거움이고 순도 100퍼센트의 나를 완성하는 꽤나 의미 있는 휴식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