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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Feb 19. 2024

흐린 날, 눈물겨운 홍어 한 점

중년의 진로수업


잔뜩 흐린 겨울날,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정적을 깨듯 전화가 울린다. 엄마다. 아빠가 사람도 못 알아보고 기운도 없고 느낌이 이상하다고, 혹시 치매가 온 것 아니냐는 엄마의 말씀에 덜컥.


급하게 예약하고 한달음에 달려간 병원.

월요일 아침, 비까지 내려서일까 택시가 잡히질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빗길에 절뚝거리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잘 걷지도 못하는 아빠가 휘청거리며 빗길에 헤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침 누군가 내리는 택시를 다짜고짜 불러 세운다. 지금 화장실 가야 해서 손님을 못 태운다는 택시기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타고, 애원하듯 사정을 얘기한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태우러 가야 한다고. 인심 좋은 기사님은 더는 묻지 않고 다행이라며 곧장 출발하신다.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하고는 엄마와 통화를 한다. 곧 갈 테니 가만계시라고.


의사는 말한다. 두 노인이 힘겹게 절뚝거리며 온 노고는 아는지 모르는지 지친 의사의 말은 건조하고 빠르기만 하다. 신장의 기능이 많이 약해지셔서 생긴 일이라고. 하나의 약을 더 처방해 줄텐데 이걸 먹으면 다리에 힘이 더 빠질 거라는 난감한 얘기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약하게 약을 쓸거라 했지만. 벌써 밥 한 공기만큼이나 약을 드시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폭풍처럼 진료를 마치고

오늘따라 넓게만 느껴지는 대학병원,

앞으로만 길게 이어진 복도를

지팡이와 내 팔뚝을 번갈아 기대가며

하염없이 절뚝거리며 걷는 두 노인을 본다.


엄마도 기우뚱
아빠도 기우뚱
세월의 무게만큼 흔들리는 발걸음이
흐린 하늘만큼 안쓰럽다.

엄마가 이서방갖다주라며 따로 싸 온 

홍어 한 박스가 담긴 쇼핑백은

흔들리는 발걸음에 맞춰

속도 모르고 촐싹거린다.

"무거운 데 왜 이런 걸 들고 왔어"

타박을 해도

"이서방이 좋아하잖아"

하며 웃기만 하는 엄마.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 부지런히 왔으니

엄마집에서 밥 먹고 간다고 다 큰 딸은

두 노인을 따라나선다.


별다를 것 없는 찬에

늘 먹는 밥이지만

후루룩 넘기는 국물이

아삭아삭 씹는 김치 한 조각이

걸림 없이 쑥 내려가는 건

다시 만난 익숙함 때문일까.


코를 맹맹 거리며 훌쩍이는 50이 다 된 딸에게 만병통치약 판콜에스 먹으라는 아빠의 다그침이 왠지 편안해서
거실안쪽 낯익은 냄새가 나는

뜨끈한 소파에서 가무룩 졸다 노곤해진다.

이런 작은 일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그냥 별일 없이 왔다 갔다 다녀오기만 했는데

'수고했다. 고맙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울 엄마.


까다로운 아빠 병시중에 힘들고 지겹다면서도

커피에 차에 과일에 자꾸만 아빠 앞으로

꺼내놓는 습관적인 손길이

노란 봉지에 떡국이며 만두며 꾹꾹 눌러 담아 애들 갖다 주라고 내어놓은 쇼핑백이

가늘고 야위어진 다리로 휘청이듯 절뚝거리며  걷는 그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 서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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