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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r 20. 2024

작고 기특한 친절

꽃샘추위 처방전

아이들도 어린데 얼른
가서 챙겨줘야지.
같이 가자! 태워줄게~


내 뒷자리 샘은 20대가 된 성인 자녀를 둔 베테랑 진로 선생님이시다. 퇴근 시간이 되면 다들 제2의 직장인 집을 향해 나가바쁘다. 진로샘은 버스로 출퇴근하는 나를 알아차리시고는 선뜻 차를 태워주신다고 호의를 베프신다. 아이들을 다 키워내신 선배님의 경험치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충을 먼저 헤아리시는 그 마음씀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요즘은 유난히 이런 작고 사소한 친절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직장에서의 즐거움이 점점 사라지고 인간관계도 차가워져서일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라기보다는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내가 덕을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선생님, 혼자 식사하시면 외로우시니까 제가 기다려드릴게요.
하던 일 마치시고 천천히 같이 가요.



옆 자리 짝꿍샘은 300페이지가 넘는 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끙끙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따뜻한 사람~^^


학교의 3월은 너무 바쁘다. 물론 다른 달도 바쁘지만 특히 더 바쁘다. 너나 할 것 없이 노트북에 얼굴을 처박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치면 부리나케 수업을 하러 교실로 종종걸음 치고, 돌아오면 잡무에 상담에 혼이 빠질 지경. 각자의 일로 바쁜 그런 팍팍한 일터에서 작은 친절의 힘은 실로 크다.

 

교감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침에 너무 추웠는데 먼저 오셔서
이렇게 따뜻하게 교무실을 데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작고 사소하지만 스치고 지나치는 따뜻한 손길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꼭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오늘은 갑자기 꽃샘추위가 들이닥쳤다. 손까지 시린 아침, 교무실 문을 여니 따스한 기운에 몸이 스르르 녹는다. 뒤에 오실 선생님들을 위한 고마운 손길이 있었음을 감지하고 먼저 출근하신 교감선생님을 얼른 찾아가 감사인사를 드린다. 작은 친절은 또 다른 친절을 낳는 선순환의 매직파워를 지닌다.


오늘은 학부모 총회날, 코로나 이후 체육관에서 하는 첫 행사라 준비할 것이 많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는 아니지만 교무실이 들썩일 정도로 정신이 없다. 할 일이 많아 용역인력을 써야 하나 고심하다 결국 선생님들이 나서서 그 많은 일을 다 했다. 의자를 깔고 방송을 점검하고 식순에 맞춰 동선을 짜고 현수막을 만들고 걸고 준비하는 손길들.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선뜻 나서지 못한다. 아직 치료 중인 허리 때문에 돕지 못해 미안해할 뿐이다.


샘은 여기 계셔요.
허리 아프니까 무리하면 안 돼~


주변 사람의 불편을 먼저 알아차려주는 말, 한마디 무거운 마음이 풀린다. 못 도와주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전화는 내가 받을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린다.


직장에서 부드러운 말들이 오고 가면 차갑던 일터가 비로소 따뜻해진다. 일할 맛도 나고 편안함도 느껴진다. 나의 일 뿐 아니라 주변의 힘든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만큼 이곳에 적응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작은 친절이 만든  편안함, 피곤하고 바쁜 3월, 다시 패딩을 꺼내 입을 만큼 추운 꽃샘추위를 날려버리기에 딱 좋은 작고 기특한 친절함, 그 따뜻함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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