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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Apr 13. 2024

계속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해!

지나친 완벽주의의 독

근데 우리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몇 해 전, 마을공동체 활동이 한창이던 때, 친한 한 엄마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머리가 띵~! 순간 멈칫했다. 엄마 독서모임으로 시작한 마을공동체가 아이로 아빠로 점점 규모가 확장되고 커지고 있을 때였다. 그 엄마는 가족독서도 독후활동도 서로 나누며 자극을 받아 더 잘해보자는 취지의 내 말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땐 그 말을 가족과 아이들까지 이끌며 책을 읽히기가 어려운 엄마의 넋두리 정도로만 여기고 넘겼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지나친 완벽주의를 지적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인정받으려는 인정강박을 지니게 된다. "나는 ~해야 한다"는 당위를 만들어낸다. (중략)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일수록 당위적 사고가 많다.  

즉,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거나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이는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향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흔히 강한 사람, 똑똑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 실제보다 과장된 이상적인 자아상을 쫓는다. 이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래야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문요한. 80쪽


더 나은 내가 되어야 더 많이 인정받을 수 있어.

머릿속에 새겨진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단련하고 수련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유도 필요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걸로 믿고 나를 채찍질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모임을 더 크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애쓰는 나를 칭찬했고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끝에는 왠지 모를 공허함이 가득했다. 진짜 내가 힘들 때는 그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속상해했지만 알고 보니 나는 내 힘듦을 나눌 줄을 몰랐다. 힘든 내색을 하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건 리더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씩씩하게 굳건히 지키고 버티는 모습만을 보였던 미련한 사람이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많은 모임을 끝냈지만. 남들이 모르는  공허함과 무력함으로 얼룩진 깊은 상처가 내게 남아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성실과 근면, 인내와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내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성이었다. 나의 희생과 양보는 순수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인정욕구가 더  컸을 텐데 그것을 감추고 타인의 칭찬을 갈구하고 노심초사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폈던 불안했던 과거의 내가 보인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었다.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건강하지 않은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완벽하지 않아도 멋지지 않아도 칭찬받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걸 모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몰아가서 결국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를 아는 것보다 남들 눈에 더 멋진 내가 되는 일에만 신경 쓰던 어리석은 나였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냥 평범하게 잊히는 사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정도만 살아도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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