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5)
한 통의 편지
싱클레어는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 편지는 데미안의 답장, 알쏭달쏭한 내용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싱클레어는 또다시 그 모호한 글귀에 사로잡히고 만다.
깨고 나오기
그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망치로 하나의 세계를 깨는 것은 적극적인 자기 파괴에서 시작한다. 현재 내 세계가 끝이 아님을 완전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그 경계를 허무는 용기,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을 예고한다.
익숙함을 버리기
익숙한 학교를 떠난다. 4년간 정든 학교, 정든 사람들과 헤어진다. 공립학교 교원들은 주기적으로 근무 학교를 옮긴다. 같은 시에 10년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그래서 작년에 새로운 시로 전근을 신청했다. 그리고 엊그제, 부천시의 한 학교에 발령받았다. 3개 학년 다 합해서 총 10 학급이 전부인 작은 학교. 작아서 가족적이고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한 학교가 처리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규모가 작으면 교사 하나가 처리할 업무가 몇 배나 늘어나서 몇 배나 더 힘들 수도 있다는 현실, 100개의 일을 50명 교사가 있는 학교에서는 각자 2개씩 하면 되지만, 교사수가 20명이면 한 교사 일을 5개씩 해야 하는 것이다. 학급수가 적으면 교사수도 줄기에 학교업무가 훨씬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재고 따질 것도 없는 게 결국 익숙한 어려움을 선택하느냐 새로운 어려움을 선택하느냐에 문제일 뿐. 결국 요즘은 너나 나나 이 학교나 저 학교나 다 어렵고 힘들다. 어디서나 선과 악, 나쁨과 좋음,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고, 좋다고 소문난 곳이 마냥 좋지만도 안 좋다고 하는 곳도 다 나쁘지도 않다는 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체득해 버린 중년의 나이라 괜한 고민과 걱정은 저 멀리 날려버린다. 그래도 익숙하고 편한 것을 조금 일찍 떠나버린 건,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구를 찾은 패기라고 볼 수 있다. 용기를 내서 망치를 들고 익숙함을 깨고 새로운 곳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나.
낯선 자리
익숙한 책상도 늘 쓰던 컴퓨터도 내 의자도 내 컵도 없는 낯선 자리에 들어섰다. 이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해야 한다. 새로운 동료, 새로운 관리자, 새로운 아이들까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볕이 잘 드는 안쪽에 자리를 잡고 흩트러진 짐을 치우고 내 물건과 책을 두고 컵과 문구류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빙글 도는 의자에 앉아본다. 허리를 기대고 낯선 공기도 마셔본다.
잘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집중하기
다시 0에서 시작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다시 잘할 수 있을까. 나이가 50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은 늘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다. 그래도 근무지 이동 사이에는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이 있다. 이전 학교의 일은 끝났고 새로운 학교의 일을 도착하지 않은 시간, 그런데 이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은 내게 나 자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했던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했다.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나의 행적이 머릿속 적당한 서랍에 정리되고 앞으로의 일들도 딱 맞는 이름표를 달아 칸칸이 넣어둔다. 챗 gpt와 앞으로 내 진로도 진지하게 얘기해본다. 이것저것 내가 택할 수 있는 진로도 알아보고 필요한 것들도 체크한다. 생각보다 내가 해 온 일이 많았음에 놀라고 그 일들이 승진이라는 것에 맞는 숫자가 될 수 없음에 또 놀라고, 나라는 사람을 제도 속에 넣기란 어렵겠구나라는 것을 알고 또 놀라고. 결국 이런저런 탐색 끝에 그저 내 멋대로 살아보자라는 뻔한 결론에 도달했음에 또 놀란다. 50대의 진로는 무겁지만 또 가볍고 가볍지만 또 무겁다. 나라는 사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탐색의 시간을 주었기에 이 시간이 귀하고 또 달콤하다.
23년 4박스 인생
지난 학교서 싸 온 짐이 겨우 네 박스, 교직인생 23년의 짐은 생각보다 단출하다. 새로운 곳에서 난 또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상을 채우게 될까. 몽글거리는 커피잔의 하얀 거품만 하릴없이 들여다본다. 새가 따뜻한 알에서 나오려나보다. 코끝을 아리던 추위가 제법 누그러졌다. 새로운 세상의 문이 이제 막 열리고 있다.
#라라크루1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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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