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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May 21. 2022

교무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한 아이

<윤여사 김밥집> 학급운영기

 3월 말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즈음. 우리 집에도 그분이 찾아오셨다. 백신을 맞지 않았던 초2 막내를 시작으로 가족들이 차례차례 도미노처럼 확진을 받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막내와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던 터라 피할 재간이 없었다. 막내가 확진되고 3일 후 결국 나도 자가진단 키트에 두줄로 확진 통보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7일간 병가를 내고 쉰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코로나가 올 거라 예상했었던 걸까. 중1 새내기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의 기본인 청소, 급식당번, 1인 1 역할도 서둘러 연습시켜둔 터였다. 이제 마침 각자 스스로의 할 일을 잘할 수 있게 된 바로 그때여서 '아,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 반 아이들이 아무리 착하고 순하다고는 해도 학기초에 담임선생님이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굉장히 미안하고 걱정되는 일이었다. 병가를 내고 첫 째날 저녁, 반톡에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다. "애들아. 오늘 잘 지냈니? 다들 잘 지냈는지 궁금하다" 한동안 별다른 응답이 없다. 그러다 자폐가 있는 도움반(옛날 말로 특수반) 친구, K가 답을 한다.


K: 선생님 어디 있었어요? 오늘 선생님 찾아다녔어요

나: 에고. K야. 미안해요. 샘이 미리 말 못 해서

K: 어디에 있어요?

나: 아파서 집에 있어요.

K: 빨리나아유.

나: 응. K야. 고맙다.


 뜻밖의 말에 눈물이 핑 돈다. K는 늘 내가 먼저 챙기고 돌봐야 하는 아이로 생각해서 일까. 하루 종일 나를 찾아다녔다는 말에 걱정과 놀라움, 동시에 큰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기쁜 나머지 같은 교무 실샘들께도 얼른 카톡으로 그 감동을 나눈다. 선생님들은 오늘 안 그래도 K가 하루 종일 교무실을 들락거려서 '무슨 일이 있나,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하신다. 어떤 샘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교무실에 그만 오라고 따끔하게 혼까지 내셨다 하고. '지금 보니 담임선생님을 찾았던 거였구나. '하시며 다들 신통방통해하신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려우니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할 수 없었거나 혹은 금방 낫고 오실 거라 믿고 큰 반응이 없었을 거다. 그런 아이들이 서운하다는 생각보다는 늘 챙김을 받아야 하는 도움반 K가 스스럼없이 선생님을 걱정했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든다. 교육을 통해 우리가 가르치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질문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K가 가장 중요한 하나는 잘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건 바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장애라는 이름의 낙인이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들과 같이 읽고 있는 영어 원서 <Fish in a tree>의 난독증을 앓고 있는 Ally가 생각난다. 그녀는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선생님 Daniel의 도움으로 서서히 자신의 재능을 찾고 자신 안의 자존감도 회복하게 된다. 그는 Ally의 숨은 재능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았다. Ally가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글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녀를 지도하였다. 나도 우리 반 K가 평생 도움을 받을 아이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반드시 그만의 빛나는 능력과 재능으로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어 친구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꼭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길 상상한다. K도 사람들을 향한 그만의 똑똑함으로 빛날 것임을 이번 일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7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학교에 복귀한 날, 누구보다 먼저 K가 교무실로 찾아와 말을 건다.

K:선생님. 다시 와서 너무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나: 응. K야. 샘을 이렇게 기다려주고 걱정해주고 또 반겨주니 너무 고마워요."
K: 선생님. 저를 존중해서 존댓말 하는 거지요?
나: 네~ 그럼요.

K의 작은 등을 토닥토닥하며 '암요, 오늘도 K한테 또 배우고 있는 걸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Everyone is smart in different ways.
맞아. 우린 모두 다른 방식으로 똑똑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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