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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n 20. 2022

2% 모자란 수업이 더 신나요~!

All Right English: 윤쌤의 영어수업

 초임 시절 뭐든 많이 멋지게 꽉 채워 수업을 하면 좋은 줄 알았다. 학습지에 교구에 게임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해서 한 번에 쫘르륵~펼쳐놓고 수업하고 뿌듯해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런 수업을 일 년 내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생활형 교사. 하루에 4~5시간이나 되는 수업을 늘 그렇게 멋지게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내기 교사 시절,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는  나이 지긋하고 연륜이 있는 선생님께서 흡사 무림의 고수처럼 교과서 한 권만 달랑 들고 수업을 마실 가듯 왔다 갔다 하셨다. 그 여유 있는 모습이 어쩜 그리 신기한지. 힘을 빼고 살살 수업을 해도 아이들이 잘 따랐고 항상 웃는 얼굴에 인자한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우고, 더하기

이제 20년 조금 넘은 경력교사지만 잘은 몰라도 조금씩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그 비법은 바로, 비우고 더하기. 가르칠 것을 최소화하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 그 다음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더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으면 언제든 더할 수도 뺄 수도 있지만 거추장스럽게 많이 어렵게 준비한 것은 도무지 어지러워 중요한 하나를 짚어내기가 힘들다.

최상급은 왜 필요하지?

이번 과의 중요 문법은 최상급, 최상급의 형태와 예외, 많은 예문을 줄줄이 읊어대기 전에 묻는다.

"애들아, 우리는 왜 최상급이 필요할까? 무엇을 하기 위해서 일까?"

갸우뚱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쳐다본다. 잠깐 참으면 그럴듯한 답이 나온다.

"비교하기 위해서요!"

"오케. 그렇지~!"

"그럼 어떻게 비교하면 좋을까. 원래의 형태 그대로를 두고 비교하는 원급 비교,

다른 것보다 더 잘하는 걸 말하기 위한 비교급 비교

가장 잘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최상급 비교 이렇게 하면 되겠네"


맨 앞줄에 졸고 있는 가은(이하 학생이름은 모두 가명) 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가은이는 키가 크지?"

"네~"

"누구만큼 크지? 성재만큼 크잖아~ 맞나.나와서 재볼까? 오~비슷한데.

그럼 '가은 is as tall as 성재.'라고 하면 되겠다.

아 근데 유나는 성재보다 더 크잖아.

유나 is taller than 성재.

그럼 제일 큰 사람은 누구지?~맞다. 유나.

유나 is the tallest in our class.

근데 최상급에서는 범위가 중요한 거 알지. 우리반이 아니라 전교가 범위가 되면 유나가 아니라 다른 친구가 가장 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또 최상급을 만들어볼까. 정은이는 뭐가 최고지?"

"머리가 길어요."

"맞네. 그럼 어떻게 영작할까?"

"정은 has the longest hair in our class.

자, 이제 너희들이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최상급 예문을 만들어보자. 여기 주어진 단어, 형용사를 이용해서 만들면 돼. 다  만든 사람들은 한 사람씩 나와서 칠판에 적는거야."


이렇게 한 아이씩 특징을 찾아 예문을 만드니 어느새 칠판이 가득 채워진다. 문법이 내 삶으로 내 친구의 글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 별 것 아닌 활동으로 잠자던 아이들까지 살아난다.

 영어 수업하면 요가지~

우탕탕당 점심시간이 끝난 후, 5교시. 긴긴 설명으로 수업을 했다간 집단 수면상태를 면키 힘들다. 오늘은 "Listening &Speaking"시간 짧은 대화문을 듣고 중요 표현을 익힌다.


Have you ever tried flying yoga before?



이 예문을 본 순간, 플라잉 요가가 뭐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혹시 플라잉 요가해본 사람?"

오잉~그게 뭐지. 먹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아이들이 쳐다본다.

"그래, 궁금하니까 찾아볼까?"

"네~"

재밌어 보이는 동영상을 찾아보니, 플라잉 요가에 대한 궁금증도 풀리고 졸림도 사라진 듯하다. 그럼 샘이 질문해볼게. 너희들이 대답해볼래? 답을 못하면 잠도 깰 겸 요가 자세 한번 해보자. 오늘은 '나무자세'로 도전해보자.

눈빛이 흐리멍덩한 잘듯 말듯한 맨뒤 녀석의 이름을 불러본다.

"Have you ever tried riding a horse?"

"네? 그게 ~  "

"그래. 어디 하는 줄 모르는 거니. 혹시? 그럼 우리 나무자세 도전!

<어린이 동아> 2014.03.10 기사 캡쳐

흔들흔들 아슬아슬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친구들 모습에 어느새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다음 질문의 당첨자는 누굴까? 애매한 상황엔 돌림판이 딱이다. 별거 아닌 것에 긴장감이 백배. 아이들은 너도나도 안 걸리려고 표현을 익히고 외운다. 이쯤 되면 요가가 영어수업시간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 셈. 몇 번 순서가 돌아가고 답을 못한 요가 수행자가 교실 앞에 나무자세로 서있으니 아이들은 "가로수길"이 되었다고 웃고 난리다.


 이래저래 압박이 컸던 5교시 수업을 요가와 영어 <have you ever~> 표현의 콜라보로 (꿈나라로 간) 전사자 없이 무사히 임무가 완료되었다. 과연 비우고 더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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