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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요일 Jun 18. 2022

나 때는 말이야~달콤 쌉싸름한 라떼산책

사. 사. 모 공존 일기

해 질 녘,

하얀 구름과 푸른빛 하늘과 붉은색 노을이 고딕 양식으로 높이 솟은 대학 건물과 어우러져 장엄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게 얼마만인가? 대학교 캠퍼스를 걷는 게.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학 입학한 지 몇 년 지나면 30년이 다되어간다. 아. 진짜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렀구나.


딸 넷과 엄마 넷이 멀리 회기동에 왔다. 딸 넷은 대학 다니는 언니랑 캠퍼스 투어를 하고 엄마 넷은 교정이 이쁘다고 소문난 경희대를 걷는다. 아름드리나무로 시원한 가로수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헉헉 거리며 올라서니 이렇게 멋진 장면이 펼쳐진다.


엄마 넷이 계단 옆 나지막한 난간에 올망졸망 걸터앉는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한동안 말없이 응시한다. 앳된 학생들이 꺄르르 꺄르르 웃으며 삼삼오오 지나가고. 나도 모르게 달팽이처럼 느리게 시간이 가  시절이 하나 둘 소환된. 돈은 없을지언정 약속을 따로 잡을 번거로움도 필요 없을 때였다. 오며 가며 만난 선배, 동기들이 사구려 호프집에 모여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심각할 것도 없는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홀딱 새기도 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얽히고 꼬인 썸남, 썸녀 고민을 듣느라 주구장창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앞으로 뭘 하고 사나 걱정만 키우던 시절. 도서관 구석에 비장한 각오로 자리를 잡고 책을 키높이만큼이나 잔뜩 쌓아두고는 결국 스르륵 낮잠이나 자던 오후. 교수님을 구워삶아 별것도 없는 야외수업을 하자고 조르던 .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몰랐지만 대학이 주는 자유시간을 한없이 누렸던 호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불경기와 구직난에 팍팍한 대학생활을 한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한량같은 시절이 잠깐이라도 있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는 눈뜨고 일어나면 어느새 하루해가 지고 잔뜩 쌓인 설거지를 뒤로하고 눈감으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바쁨의 일상: 살림, 육아, 일의 무한루프 지옥에 빠져 허덕인다. 모처럼 대학에 오니, 아련한 추억과 고단한 오늘이 겹쳐 묘한 하늘 빛깔만큼이나 생경한 여유로움을 툭 던진다. 느릿느릿 캠퍼스를 걸으니 지나온 20대가 말을 걸고, 지금의 40대가 동행한다. 우리에게도 한없이 여유로웠던 리즈시절이 있었음에 쓴웃음을 , 한가로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달달한 미소가 번지는 달콤 쌉싸름한 라떼같은 산책을 즐긴다. 빠르게 걸으면 놓칠세라 느린 걸음으로 추억의 되감기를 반복하며 낯선 교문을 빠져나온다.


안녕, 나의 20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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