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월령 Oct 05. 2023

가장 소중한 것을 놓아라


돈 잘 버는 작곡가는 없다

#19 가장 소중한 것을 놓아라


< 살아보려 발버둥 칠수록
점점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



        살아오며 후회하는 일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유튜브 채널에 1일 1 영상을 업로드한 것이다. 여러분의 입장에선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상을 많이 올리는 건 좋은 것 아닌가? 음, 아니었다. 1일 1 영상은 사실 구독자 100만쯤 되는 대단한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 했다기보다는 막다른 길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시도해 본 방법이었다. 이전에 이야기했듯 건강 문제로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뭔들 못하겠나.


어릴 적부터 평발이 있어서 오래 걷거나 오래 서있는 걸 잘 못했다. 지금은 운동과 스트레칭을 통해 조금 나아졌는데 초등학교 때엔 발뒤꿈치 뼈에 염증이 생겨 거의 앉아서 생활해야 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군대는 어떻게 멀쩡히 다녀온 건지 모르겠다.


갑작스레 발목 아픈 실업자가 되기 전 마지막 직장은 일식집 요리사였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 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이 즐거워 시작한 일이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이 항상 서있어야 한다. 나에겐 서있는 게 가장 힘든데 말이다. 좋아는 하지만 몸에는 맞지 않는 일을 하며 1년 이상을 버티고 버티다 보니 이번엔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겨버렸다. 도저히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떠올린 여러 가지 방법 중 첫 번째가 1일 1 영상인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채널 운영이나 마케팅을 잘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컨셉은 좀 지켰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해 너무 무지한 나머지 영상을 무작정 많이 제작하려 한 것이 화근이다. 청월령 자작곡 음악 채널이라는 컨셉에 맞는 자작곡 연주나 플레이리스트 영상까진 좋았다. 그러나 점점 소재가 고갈되어 브이로그, 제품 리뷰 등 분야를 막론하고 손을 대 버렸다. 영상 퀄리티가 좋았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쉽게도 1일 1 영상에 목매던 시절이라 그런 건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렇게 내 채널 청월령은 내가 살아보려 발버둥 칠수록 점점 깊은 늪에 빠져들었다.


새로 업로드하는 영상의 노출 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채널 운영에 들어가는 수고에 비하면 실적은 성장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서히 의욕을 잃어갔고 결국 머지않아 유튜브 채널 운영을 포기했다.




   최근에 어디선가 [가장 소중한 것을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등바등 놓지 못하며 집착하고 있는 것을 놓아야 비로소 주변이,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보인다고. 그게 어떻게 쉽게 가능하겠는가. 상황을 벗어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체스나 장기와 같은 게임을 해보면 직접 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남의 게임에 훈수를 두는 게 훨씬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애도 자기 연애가 아니라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건 참 쉽다.


놓고 싶지 않았다. 손에 피가 흐르도록 간절히 쥐고 있었다. 그저 떨어뜨리고 빼앗겼을 뿐이다. 아파서 직장을 잃고, 망해서 유튜브를 포기하고, 돈이 없어서 청월령 활동을 멈추고. 이후에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 포기하고 부모님에게 손은 벌렸거나 굶어 죽었다면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한 마디로 잘 됐다. 거짓말같이 잘 풀려갔다. 내려놓아야 길이 보인다더니 의도치 않았지만 정말 그 말처럼 된 것이다. 청월령을 포기하니 그제야 돈을 버는 방법이 보였다. 자존심을 버리니 배경음악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수입원이 생겼다.


이전에 어디서 일을 할 때보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거나 하진 않지만 일의 난이도는 터무니없이 쉽고 편하다. 그리고 남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일을 하니 스트레스도 덜 하다. 잠을 자도 돈이 들어온다. 자랑하는 것 같겠지만... (사실 자랑하는 것 맞다.) 며칠 정도는 맘대로 쉬어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평일 점심에도 놀러 다닌다. 작업은 저녁에 하거나 다음에 하면 되니까. 아등바등 먹고사는 걱정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됐다. 지금 내가 돈 걱정을 잠시 잊고 책을 쓰고 있는 것처럼 어떤 즐거운 일을 하며 성장해 나갈지 고민하는 쪽으로 변한 것 같다.


최근 몇 달을 이렇게 살다 보니 떼려야 뗄 수 없던 불면증이 사라졌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지인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다. 앞에서 액땜을 크게 하고 지나온 결과려나. 유튜브에 집착하던 마음도 온전히 내려놓고 지내고 있다. 내 유튜브 채널을 지금도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끔 앨범이 완성되면 음원 영상을 올린다든지, 공연이 있을 때 공연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고민 중이긴 하다. (최근 플레이리스트 채널로 변신 중이다.)


작곡가로서의 청월령도 마찬가지다. 즐거울 때에만 작업하자는 마음으로 완전히 내려놓고 있다. 한편 부업으로 배경음악 제작을 매일같이 하다 보니 작곡 실력은 자연스레 늘고 있었다. 최근 울릉도에 여행을 다녀오며 영감을 받아 새로운 정규앨범을 작업하는 중이다. (이미 정규앨범 flow로 발매되었다.) 마치 피아노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 이전과 비교가 안 되는 퀄리티의 곡들이 어렵지 않게 만들어진다. 조바심에 잠시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되찾아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온 나는 지금, 저마다의 소중한 것을 꽉 움켜쥐고 피를 흘리며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전 19화 예술가가 돈을 못 버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