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는 방법_2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가? 허나, 세상은 나를 가진 적이 없다!
<전 편과 이어집니다.>
쏟아지듯 들어간 그곳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박힌 낡은 카운터가 나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끈질긴 눈빛을 애써 모른 채 하며, 나는 황급히 표를 끊고 시커먼 동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임에도 내부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할 수 없는. 나와 같은 목표를 지닌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슬퍼졌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른 오전부터 커다란 가방을 멘 채로 쭈뼛대며 찜질방에 들어온 여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기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눈길을 두지 않았다. 저마다의 비밀스러운 이유들로 바쁘게, 또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성별이나 나이를 가리지 않는 남녀노소 평등한 유토피아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원래 그 시간에 있어야 할 곳은 지긋지긋한 공포의 회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렇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이 적은 공간을 찾아다녔다. 미처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인수인계 파일은 꼭 넘겨주어야 했기에. 그들이 미운 것과는 별개로 내 충동적이고도 계획적인 행동이 낳은,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떼어내고 싶었다. 삼 주 남짓한 시간을 머물렀지만, 넘겨주어야 할 파일이 많았다. 새삼, 박하고 차가운 대우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훗날, 내가 맡게 될 수도 있었던 프로젝트의 예비 기획안까지 모조리 회사 메일로 전송한 뒤,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정말 죄송하지만, 개인사정으로 출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로부터 도망쳤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리를 마친 뒤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미안해 나 일 그만뒀어. 짧고 간결한 연락을 마지막으로 나는 핸드폰의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 일은 내 생애 첫 잠수였다. 결국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나는 이토록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장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아무 감정 없는 목석이 된 나는, 지고 있던 짐들을 개인 락커에 담았다. 이제 무얼 해야 할까. 약이 없으니 지금 당장 죽을 수는 없다. 생각이 깊어지니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일단 쉬자. 죽기 전에 조금은 쉬어도 될 것이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어차피 모아서 죽은 뒤에 갚게 되겠지. 어쩌면 죽음 자체로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처 없이 미로 같은 내부를 훑다 보니, ‘여성 수면실’이라고 적힌 공간 앞에 발이 닿았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들이 칠흑 같은 암흑에게 잔뜩 잡아먹힌 채로 꼼짝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누가 있건 말건 그 어떤 이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불규칙적으로 부딪히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살아있는 소리였다. 나는 깊숙한 곳에서도 더 깊은 곳을 찾아 파고들었다. 그러자, 여자들의 소리에 내 숨이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있음을 느낀 나는,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아무렇게나 몸을 구긴 채로 누웠다.
눈을 아무리 감았다 떠도, 세상은 눈 감았을 때 보았던 어둠 그대로였다. 그중에서 현실과 꿈을 알려주는 건 오로지, 벽에 껌처럼 들러붙어 밝게 빛을 내는 전자시계뿐이었다. 오전 아홉 시 반, 나의 부재 소식이 먼발치까지 소문났을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그러나 핸드폰을 꺼 두었기에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그토록 많아 복잡하게 얽힌 곳에서도, 나는 평화로웠다.
끔뻑끔뻑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이 길어지자, 점차 긴장이 풀리며 몸이 노곤해졌다. 졸음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느 떨어진 바다에서부터 나를 토닥이는 잔잔한 물줄기들이, 내 발목을 타고 등을 넘어, 이윽고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편안하다. 얼마만의 평온인가 싶어 서러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흩어지는 순간, 나는 깊은 단잠에 빠졌다.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쫓기는 꿈이었다. 나를 쫓는 무서운 얼굴들이 자주 바뀌었다. 보기 싫은 상사였다가, 나를 괴롭게 했던 그녀였다가, 사랑하는 가족이었다가 했다. 쫓기다 못해 커다란 구렁텅이에 빠진 내가 눈을 떴을 땐, 조금 전 잠들었던 그곳이었다. 그런데, 그 찰나처럼 느껴졌던 시간들은 결코 조금이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보게 된 초록색 전자시계는 어느덧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한창 일에 시달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오랜 공백을 무방비한 꿈 속에서 보낸 이상한 날이었다.
피로가 풀리며 몸이 편안해지자, 이번엔 또 다른 상념들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곳에 계속 머물러야 하나? 일은 결국 그만두었고, 나는 해방되었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잇따르자 문득 억울해졌다. 그런데 나, 왜 죽기로 했었지? 대체 내가 왜 죽어야 하는 거야?
나는 아마도 죽고 싶었던 마음보다는,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게 된다. 그리고 내가 무능력한 사람임을, 나 자신이 적나라하게 느낄 것이다. 난 오직 하나의 길만을 향해 열심히 달린 죄밖에 없었는데, 그 길이 망가진 이 순간,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모든 건 전부 나를 괴롭힌 회사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는 내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고로 내가 죽어야 한다. 내 머릿속 그 어느 곳에도 내가 새로운 마음으로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한다는 전제는 없었다. 모든 것이 송두리째 끝나버리는 지독한 닫힌 결말만이 존재했다.
사람은 참 웃기다. 그토록 간절하던 게 해결되고 나면, 전전긍긍하던 상황들도 아무 일이 아닌 게 된다. 나아가, 왜 그렇게 안달이 났었는지조차 기억을 못 한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일차원적 생각에서 그쳤으면 될 것을, 왜 구태여 죽을 생각까지 몰고 간 걸까. 회사라는 지옥에서 해방이 되었단 생각에 심신이 살만해지자, 은연중에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한 곳에 너무 깊은 마음을 쏟다 보면, 그곳이 곧 내가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곳이 무너졌을 때, 나 또한 없어지게 된다는 슬픈 현실을.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고은의 시, <노를 젓다가>를 떠올렸다. 노 젓기라는 소중한 목표를 사랑하던 나는, 그 노를 놓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게 없으면 의미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젓고 또 저어도 길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내가 노를 놓친 순간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죽을 것이 아니라, 넓은 물을 돌아봐야 할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나에겐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길을 놓친 순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 죽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깜깜한 숨소리가 움트는 곳에서 작은 희망의 불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집에 가야겠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조용히 몸을 이끌고, 살금살금 수면실을 빠져나왔다. 세상에서 지워졌던 내 모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죽어야 하는 어느 순간이 온대도, 그 시간이 지금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막상 나오기는 했지만, 핸드폰을 켜기가 너무나 두려웠다. 부모님의 걱정에 더불어, 나를 괴롭게 하던 '그녀'의 답장이 내 공간을 뚫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나를 옥죄어왔다. 그래도 맞서야 했다.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도, 다른 의미의 책임이었기에. 무책임 속의 책임이 누군가에겐 비웃을 일이었을지 몰라도, 죽을 결심까지 했던 나에겐 생사가 걸린 만큼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핸드폰은 켜졌고, 예상대로 하늘이 무너질만한 큰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마무리의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어둑해지는 날씨를 바라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모든 지점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필름이 끊긴 듯 떠오르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생생해서, 이름 모를 추억에 아직까지 몸서리치곤 한다. 나는 아마 그날, 퇴근하던 엄마와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것 같다. 엄마의 표정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지극히 내 기준에서 본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는 밀려드는 자식 걱정에 일 년 같았던 하루 내내를 몸살로 앓았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기에 가능했고, 지나고 난 뒤 크게 반성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다. 그때 내가 몸 담았던 곳과의 인연에 복잡한 상념이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머무르는 동안은 뼈가 부서져라 일했기에, 내 마음에 쌓여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내 태도가 다소 뻔뻔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크게 미안하진 않다. 그야말로, 미안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노력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어쩌면 노력을 해도 뭐 하나 이루는 게 쉽지 않은 사회의 구조가 제아무리 불만이라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 한다. 그렇지만, 노를 젓다가 잠시 놓쳤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놓치면 놓치는 대로 내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면 되니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곳에서 또 다른 매력적인 노를 만나거나, 싱그러운 나뭇잎, 고운 새의 노래, 잔잔한 물결이라는 나만의 가치 있는 방향을 만나게 될지도.
나는 그래서 열심히 노를 젓는다. 놓칠 기회를 또다시 얻기 위하여, 그리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도전의 노를 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