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만두를 소개합니다
궁금하시죠? 관심 생기시죠? 귀여운 우리 집 만두를 지금 공개합니다!
우리 집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만두’가 있다. 만두는 내 애정은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의 관심까지 한 몸에 독차지하는 특별한 추억의 아름다움이다. 하얗고 작고 포슬포슬한 그 아이의 여린 몸이 다치지 않도록 가족들은 늘 노심초사다. 보드라운 그 애와의 만남을 준비할 때엔 언제나 설레는 감정, 한편으로는 긴장되는 심장을 끌어안는다. 좀처럼 사람 마음 같지 않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나, 우리 집 ‘만두’를 반려견 혹은 반려묘로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 기대에 대한 심심한 사과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 글에 담겨있는 ‘만두’라는 녀석은, 설 명절 전날마다 갖가지 혼과 얼을 담아 탄생시키는 ‘먹는 만두’이기 때문에. 그것도 맵고 강렬한 김치 만두다.
‘갈 때 가더라도 맛있는 음식은 먹고 때깔 곱게 가자!’ 이는 내 삶의 나침반과도 비슷한 말이었다. 그 맛있는 음식에는 항상 만두가 포함되었다. 나는 한 가지에 연모를 품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이를테면 먼 곳을 갈 때마다 좋아하는 음식의 테마를 정하고, 맛집을 샅샅이 찾아내어 이른바 ‘도장 깨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테마는 얼마 전까지 만두였다. 나의 지독한 만두 예찬은, 마치 때 놓친 사랑에 미련 가득한 여성의 한풀이처럼 고독했다.
어릴 땐, 떡집 아들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미래 결혼 상대는 좋아하는 음식이 바뀔 때마다 헌 양말 갈아 치우듯 변했다. 그다음엔 빵집 아들이었고, 치킨집 아들일 적도 있었으며, 가장 최근의 기억은 만두집 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흘러나오는 전설로 중국집 딸은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짜장면을 입에도 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 매일같이 맡는 춘장에 기름 냄새까지 질릴 대로 질려서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나는 만두 만드는 것을 참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어른의 궤도를 웃도는 시기를 마주하면서부터는 그날이 참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제는 싫은 건지도 몰랐다.
만두를 만드는 날엔, 대청소할 때와 같은 민첩하고도 꼼꼼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먼저, 이른 시간 부지런하게 몸을 이끌어 싱싱한 재료들을 공수해 오는 미션부터 성공해야 한다. 바삐 움직이면서도 속 재료가 다양하고 풍성해야 맛있다는 철칙을 절대 잊지 않는다. 아삭아삭한 숙주, 갈아놓은 돼지고기, 시원 새콤한 김치, 알싸한 청양고추, 고소한 두부, 그리고 쫄깃한 당면 군단까지 총집합시킨 후에야, 다음 관문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 모든 재료들을 일일이 다지는 것이다.
채 썬다는 말로는 부족하기에, 입 안에서 재료들이 겉돌지 않고 한데 뭉쳐져 조화로운 맛을 낼 수 있도록 잘 다져놓아야 한다. 내 기준에선 가장 고된 과정 중 하나다. 게다가 엄마와 나는 손목 힘이 부족하기에, 물기를 짜내는 코스는 오로지 아빠의 몫이 되었다. 아빠의 소중함을, 그리고 가족의 단합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고귀한 화합의 시간. 모든 여정이 끝난 뒤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다채로운 실체를 입 안에 머금기 위하여. 자발적 요식 운동에 기꺼이 우리의 몸을 바쳤다.
정성을 탈탈 갈아 넣은 재료들이 모두 완성된 뒤엔, 그들끼리 서로 가족이 되어주도록 잘 버무려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낙오되는 이는 없는지, 혼자 우뚝 선 이는 없는지, 누구 하나의 자기주장이 뚫고 나오거나 가라앉아서는 안 되기에, 심혈을 기울여 간 맞추는 작업을 한다. 여느 장인이 평생토록 꾸렸다는 맛집에 견줄 만큼은 아닐지라도, 자부심 넘치는 우리 집 기념물로써 당당할 수 있도록.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이 만두를 맛보는 순간 사 먹는 만두와 비교되는 맛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알음알음 냉동식품을 구매하기는 한다. 요즘 만두 잘 나오더라고요.
만두소가 적절하게 제 성격을 찾은 것 같다면, 최종 관문이 남았다. 흰 보자기에 인생을 담는 일. 하얗고 동그란 마음 위에 애정의 조미료로 간을 맞춘 만두소를 욱여넣는다. 만두피가 찢어지지 않도록, 섬세하고도 너무 늦지 않은 손길이어야 한다. 이렇게 만두 하나를 계획해도 대충 만들지 않는 작은 신념이,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내는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희었던 보자기는 이제 복주머니가 되었다. 함께하는 이들의 새해를 밝게 비춰줄 것이다.
나는 때때로 단순하고 복잡한 삶에 치일수록,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만두 빚기’가 싫고 원망스러웠다. 살아가는 모든 날이 힘들었다. 이렇듯 마음이 많이 식었던 시기엔 고생할 바에야, 사 먹는 만두가 더 낫지 않겠냐는 볼멘소리도 허공 위로 적지 않게 날렸다. 어쩌면 만두와 내 일상을 애처로운 동병상련의 처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우리 집 만두를 사랑한다. 그 녀석은 내 눈물 젖은 어린 날과도 같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년 계속되었던 전통은, 내가 태어난 이후까지도 이어져 모든 삶의 모서리로써 나를 연결해 주었다. 이미 그 녀석과 함께한 시간들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가족의 구성원처럼 녹아들었다. 몇십 년 동안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어느 노부부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으로 이루어진 관계나 다름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 안에는 곱게 빚어놓은 소중한 반달이 있다. 어제부로 하나의 대장정을 끝마친 나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올해를, 어쩌면 더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감에 잔뜩 젖는 중이다. 다가올 명절 아침, 내가 한입 베어 물게 될 행운의 만두가 우리 가족 곳곳에게 스며들었으면. 나아가 이웃의 집집마다,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 글을 보듬어주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기운을 물들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우리 집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만두’가 있다.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나는 이 아이와 만나고 싶다. 우리의 고질적이고 은혜로운 만남이 건강하고 곧은길에서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