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럴까?

by 블루나잇

터벅터벅. 통 넓은 바지 하나가 좁디좁은 골목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살짝 드러난 까무잡잡한 팔목 위로는 새파란 용 문신이 보일락 말락 했다. 그 문신은 아마 팔을 타고 등을 넘어 다리까지도 뒤덮을 만큼 길게 이어졌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곁에서 거닐던 사람들이 그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을 무시무시한 문신을 상상이라도 한 듯, 몇 번 흘끔 대더니 주위를 슬며시 피해 갔다.


다섯 부위 정도는 뚫린 듯한 자기주장 드센 피어싱에, 잔뜩 물들여진 주황빛 머리칼, 게다가 주욱 늘어진 기괴한 모습의 티셔츠까지. 그 색다른 광경을 보고, 누가 눈길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으랴.

골목 안의 사람들이 그를 사이에 두고 우수수 양쪽으로 갈라지던 그 순간, 걷던 길을 멈추고 이를 지긋이 바라보던 어르신 한 분의 왼쪽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동네 주변을 뒤흔들만한 우렁찬 목청으로 한 마디 하신다. 요새 젊은 애들은 말이야, 당최 이해가 안 돼. 저걸 패션이라고. 겉을 알면 속을 알지. 본새를 보니 분명히 부모 속도 엄청나게 썩일 거야. 그렇지?


그는 할아버지의 불호령에도 꿋꿋이 갈 길을 걸었다. 귀에는 커다란 헤드폰을 얹은 채로. 나는 그의 헤드폰에서 노래가 나오지 않는 불상사 같은 일이,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패션의 자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 중 하나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틀릴지도 몰랐다. 차림새가 평범하지 않다고, 누군가의 인생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거니까.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이, 주변의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도 모를 마음속에, 작은 응원의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


그와 동시에, 몇 년 전 기억에 남겨진 일이 떠올랐다. 같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상사가 있었다. 자신의 일을 종종 부하 직원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이기에, 그를 좋은 상사라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이러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상사라는 점에 변함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가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혹은 그 사람이 그만두지 않는 이상 바뀔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자, 고단한 현실이었다.

힘이 없었던 어린 날의 나는, 그가 너무나도 싫고 경멸스럽다는 눈빛은 잠시 접어두고, 뼈가 빠져라 지극정성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다, 그가 입에 담기도 힘든 성적 발언이나, 근무 태만의 행동을 보일 때면 속으로 조용히 퇴사 날짜를 곱씹곤 했다. 나는 자주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외부 출장을 마치고,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억지로 웃고 있던 입꼬리는 마비가 되었는지 내려오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나를 어서 집으로 데려다주길. 간절히 바라며 힘겨운 퇴근길과 맞서던 중, 미처 몰랐던 그의 속사정 하나를 듣게 되었다. 그가 건넨 말들은 내 마음을 금세 혼란스럽게 헤집어놓았다.


‘예전에 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뒤로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엔 대리운전을 뛰고 있어요.’


가족을 잃는다는 건, 감히 말로 표현 못할 슬픔의 폭우다. 무심코 알게 된 남자의 과거 때문에 한순간 그 사람이 좋게 보일리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어쩌면 관심조차 없었을 상황에,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여린 감정이 깊은 곳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남자도 자신의 가족에겐 든든한 아들이자, 멋진 형이었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눈 밑이 덩달아 시큰해지는 기분이었다. 동정심이라고 표현하기엔 애매한 심정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내뱉던, 내가 지켜보고 겪었던 민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땐 느낀 감정은 아마도, 응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나 싫어했던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남들과 다른 옷차림으로 길을 걸었던 사람과, 좋지 못한 행동을 보이던 상사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사실 우리에게 있는 거였다. 어쩌면 그들의 깊은 내면까지 닿지 못하고 급하게 건넸던 불편한 시선과 편견, 그리고 경솔했는지 모를 혼자만의 넘겨짚음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다른 누구의 인생을 폄하할 자격은 없다.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니. 허점은 찾을 요량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지기 마련이기에.


복잡함이 어지럽게 춤을 추는 이곳엔, 그저 바쁘고 또 부족하게 살아가는 우리들만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하다못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악역에게도, 나쁜 짓을 저지르는 자신만의 이유들이 존재하곤 한다. 물론 수많은 보편적이지 않은 일들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겉모양이 만약, 팍팍한 세상 속에서 외면받은 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슬픈 몸부림’ 같은 거라면. 정을 가득 안고 사는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을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사연이 담긴 채 벌어지는 일들에게 무차별적인 비난을 보내기 이전에, 우리의 잿빛 일상을, 그리고 건조한 사회를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저질러서는 안 되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를 제외한 몇몇 안타까운 상황들을 예로 들고 싶은 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훔친 작은 빵조각.

부당한 임금 체불에 저항하는 거센 몸짓.

보복의 두려움에 손 내밀지 못한 방관의 태도.

내가 살기 위해 나보다 약한 이에게 떠넘긴 삶의 잔해들까지.

전부 일어나서는 안 될 좋지 않은 일들이다. 나부터 살기 위한 어떤 모습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게 살고 있으니, 특정인의 편의만 봐줄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죗값을 치러야 마땅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속에 담고 있을 갖가지 사정들을 생각하면 자꾸만 슬퍼지는 건 왜일까. 그 무엇도 원망할 대상이 없을 때면 나는, 애꿎은 세상을 탓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잘 살고 많이 가진 것과는 별개의 의미로써, 아름다운 현실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울부짖음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처음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을 마음들이, 더는 후회할 꿈을 꾸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허나, 내 앞가림도 못하는 게 무슨 오지랖이란 말인가. 고민한 지 얼마 못 가 내 인생이나 잘 챙기자고 다짐한다. 도무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머리 싸매며 사경을 헤매지 않아도, 미워하는 마음 없이 소소한 행복만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러나 과연 좋기만 할까. 만족을 모르는 인간들 덕에, 어떤 이유로든 또다시 피폐해고 말 것이다. 결국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일단, 내 인생부터 반듯해지자.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지니고 산다면, 수많은 아픔의 순간을 껴안은 슬픈 기억들이 하나둘씩 분해되어, 순수한 삶의 결정체로 재탄생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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