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는 방법_1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 하나만 지워버린 것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쯤의 일이다. 전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을 집 안에서 허덕이던 차에 운 좋게 외부적으로 꽤 괜찮아 보이는 새 직장을 찾았다. 그들은 면접 날에 처음 만난 한낱 이방인일 뿐인 내 말을 경청하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어딘가 가긍스럽게 여겨주는 따뜻한 일터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순진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생각과는 다른 일들이 그곳에서 악몽처럼 벌어졌다.
초반에는 모든 이들이 나를 아가 다루듯 사근 하게 대해주었다. 참 아늑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첫날부터 과한 업무가 맡겨졌음에도, 나를 믿어준 그들을 위해 지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성급한 신뢰로부터 나를 처참히 등져버린 것은 입사 일주일 뒤였다. 출근한 지 사흘 째 되던 무렵 한 남자 상사가 나를 개인 면담실로 불렀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멀뚱멀뚱 어떤 영문인지도 모른 채, 엄마 잃은 아이마냥 그를 따라갔다. 그러고선 집안에 있을 곳도 모르고 앉아있는 인형처럼 그가 하는 입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처음 일주일은 인수인계 기간이라 임금이 없어요.’
‘원래’ 그렇다는 회사의 체계를 미처 몰랐던 게 슬펐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날 말해줬어야 하는 게 맞지 않았나 하는 억울함이 꿈틀거리며 내 안에서 치솟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작게 대답하곤 방을 나왔다. 어쩌면 남자의 예상대로 잘 마무리된 시나리오였다. 내가 대답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수인계라 하면, 내가 할 일을 소개받는 기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입사 첫날부터 혹독하게 야근에 잡무까지 자처했던 나는, 한순간 알맹이가 쏙 빠진 강낭콩이 되었다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난 직장은 무려 이 주 동안의 임금을 인수인계라는 명목으로 주지 않았기에. 심지어 그 마저도 월급 당일 날 알았으니, 이번엔 차라리 양반인 건가 싶었다. 자기 합리화만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슬펐던 일주일을 시름시름 흘려보내고, 비로소 돈을 받고 일하는 첫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어쩐지 서늘한 공기가 나를 지분거렸다.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안온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라진 뒤였다.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는 말에도 대답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일처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아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마다 곤혹을 치르고 불안한 상황과 마주하는 사람은 매번 내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오기 직전까지 나의 위치에 있던 사람 때문이었다. 그때의 내 자리는 그녀의 승진으로 생긴 작은 틈이었다. 많은 무리의 상사들이 칼날 같은 비교와 질책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찔러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곳엔 매일같이 그녀와 내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웃었고, 나는 끝나지 않는 시간들을 울었다.
센스 넘치는 그녀가 회사 근처의 음식점을 달달 외워 점심시간이 행복했다는 둥, 일을 어찌나 잘하는지 회사의 전설로 불린다는 둥, 그녀가 줄줄이 세워놓은 업적은 친절히 내 귓가로 찾아와서, 나를 엄청난 속도와 무게로 짓눌렀다. 내 업무가 끝나도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마치 나를 배척할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 같았다. 나 따위가 뭐라고, 왜 하찮은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내가 아파할수록 그들은 더욱 강해져 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녀가 될 수 없었고, 어느덧 내 자리엔 낡고 지친 미운오리새끼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게다가, 왕복 다섯 시간의 출퇴근길은 너무나 고단하고 먹먹한 고통이었다.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깜깜한 지옥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 달도 다 채우지 못했던 어느 날의 출근길. 나는 이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는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졌다. 그 음성이 막지 못할 만큼 드세졌을 때, 나는 목적지가 아니었던 어느 낯선 곳에서 벨을 눌렀다. 짐짝 같은 몸을 힘겹게, 그리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끌어내렸다.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 하나만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 시절, 가족끼리 즐겨 보던 드라마가 있었다. 극 중 드라마 여주인공에게 큰 사건이 닥치는데, 그녀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섰고, 그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는 스토리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문득 나도 그렇게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살기 위해선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쁜 마음인지 아닌지 구분할 정신머리도 안 되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없어지겠다고 결심하니, 알약을 사고 싶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사라져야 할지 몰랐지만, 그 약들을 집어삼키면 다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작은 손으로 눈만 가려도 심적 안도감을 느끼는 것처럼, 나만 죽고 아무것도 모른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린 날의 나는 약을 어떻게 내 손에 넣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머니엔 당장 약을 살 돈마저 없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나를 죽일 땐 언제고, 이번엔 나를 살리려고 했다.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모험 같은 계획들은 일부 접고, 은신할 곳을 먼저 찾아 헤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벼랑 끝과 다름없었다.
그때 내 앞에 커다란 찜질방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사람이 많으면 그 틈에 섞일 수 있으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곧장 그 길로 향했다. 당장 출근하지 못하는, 앞으로도 영영 가지 않을 회사에, 미망인처럼 남아있을 내 이름부터 정리해야 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