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일주일
불청객 같은 그놈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무서운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강렬한 제목의 작품은, 방에 불만 꺼져도 부모님을 찾아대던 코흘리개 시절의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깨우친 뒤엔, 끔찍했던 한강의 괴물도, 새빨간 13일의 금요일도 전부 소설임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금요일과 13일이 겹치는 날엔 왠지 모를 오싹함에 어깨를 흠칫 떨곤 했다.
이후로 나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오며, 여러 계절의 순환과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를 맺었다. 그리도 고독하게 세상의 이치에 맞서 싸우다 이내 그들에게 목줄을 넘겨주게 된 지금의 나에게는, 13일의 금요일쯤은 가뿐하게 웃고 넘겨버릴 새로운 강적이 찾아왔다.
바로, 저주받은 일주일이다.
일주일의 처음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싶은 날이 있다. 기분이 좋지 않지만, 어느덧 꽤 밝은 사회인이 되어버린 나는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는 일상을 견뎌내고 있었다. 허허실실인 내가 우는 곳은 언제나 방구석이었고, 그 방구석을 이탈했을 땐 누가 봐도 행복한 여인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겉으로 행복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온갖 힘듦을 감내하던 날.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의 불가피한 만남은 물론, 주변을 둘러싼 이들 틈에서 홀로 껴있는 이방인 같은 낯선 감투를 경험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하루 정도는 오히려 액땜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기에.
문제는 화요일부터였다. 방심을 한 탓인지, 집을 나서기 전부터 핸드폰 그립톡이 똑 떨어지며 불길한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했다. 인생의 복선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조금 불안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불행은 본인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에게 들러붙는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약간의 기운 빠지는 일들은 금방 잊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습관으로 굳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힘든 일이 두세 번 반복되는 순간부터는 정신이 흐릿해진다. 속된 말처럼 멘탈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전 날이 종일 힘들었다면, 통상적으로 다음날은 덜 힘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다음날이 전 날보다 더 힘들다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니라, 더 힘든 게 맞지 않을까. 마치 전 날의 기억을 다음날의 나쁜 일들이 모조리 덮어버렸다는 붉은 신호탄 같았다.
연달아 말도 안 되게 안 풀리는 날들을 겪고 나서는 반쯤 체념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안 되는데, 어서 알라딘이 등장해 하늘을 유영하는 양탄자 위로 나를 태워 도망쳐줬으면 하는 망상을 가져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고작 일주일 중 이틀이 운 나빴을 뿐이니까, 일주일을 깡그리 묶어서 나쁜 놈으로 만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뱉은 말처럼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을 것이다. 생각이 먼발치까지 도달하자, 다음 날은 부디 무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다면, 수요일은 어땠을까? 큰 기대가 없어서였는지, 무난하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악재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유독 내가 유난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원래 정신에 지배되는 순간부터 길을 잃게 되는 종족이므로. 내내 노래를 잘 부르던 사람이 한순간 음이탈을 냈다면, 높은 확률로 누군가 그의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안에 있는 내부 스파이의 치밀한 농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작은 일이 남에겐 인생을 뒤흔들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처럼.
이윽고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저주받은 일주일. 그놈이 틀림없었다. 나는 부를 여유가 없는데 약속도 없이 무턱대고 다가와선 상처만 남기고 떠나는 불청객 같은 녀석. 떠나긴 하는 걸까, 어디선가 잠시 숨죽여 있다가 내가 행복할 때에 튀어나오는 질 나쁜 악귀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게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아픈 열등감이라면, 나는 또다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될 터였다.
목요일엔 운이 꽤 좋게 느껴졌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는 덤으로 안고 갈만 했고, 기분도 적당히 평범하게 상쾌했다. 뒤에서 작은 재앙들이 소곤대며, 나올 채비를 하는 줄도 몰랐던 나는, 그간의 일을 넉살 좋게 털어내고는 서점에 갔다. 그리고 서점에 들른 뒤엔, 엄마에게 줄 생일 선물을 사기로 했다. 선물을 사려는 일정은 얼마 전, 저주받은 화요일에 실패했던 기회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일으킨 계획이었다.
제법 쌀쌀하고 날카로운 날씨임에도, 발걸음이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웠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또 얼마나 평화로운지. 그토록 기분 좋게 방문한 백화점을 몇 번 둘러보는 성의 끝에 내 기대를 충족시키는 선물을 발견했다. 고운 산딸기 빛깔의 장지갑이었다. 낡은 엄마의 지갑을 볼 때마다 바꿔주겠노라 벼르고 있었던 그간의 고민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것에 더불어, 빨간빛의 지갑을 지니고 다니면 돈이 펑펑 들어온다는 옛 설화에 걸맞은 모양새까지 나의 인연 같았다. 마음 가득히 환희가 차올랐다.
오늘은 다행히 좋은 날이네. 쾌재를 가라앉히고는 알맞은 선물을 고른 참에 곧바로 결제를 하려는데, 갑자기 불길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고객님, 한도초과입니다.’ 슬프도록 친절했던 직원의 안내와 함께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이미 선물 포장까지 끝마쳤는데,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직원의 눈초리를 보니 덩달아, 무거운 물을 가득 머금은 솜처럼 마음 한 편이 묵직해졌다.
그놈의 저주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놀랄 일을 한번 겪고 나면, 아주 작은 일로도 사람이 노심초사하게 된다는 말이 가슴 깊은 곳을 찔러왔다.
나는 월요일부터 잔뜩 쪼그라진 심장으로 힘겹게 버텨나가는 중이었기에,
결코 움직일 리 없는 낡고 그을린 솥뚜껑 하나로도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는 상태임이 분명했다.
호숫가에서 저 혼자 유유히 젖어가는 작은 종이배처럼, 서있는 자리에서 한도를 푼다고 노력하는 슬프고도 방정맞은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문득 엄마에게 이런 내 삶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부쩍 바보 같을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곤 한다. 숫자는 늘어 가는데 크게 발전 없는 인생이라는 객관이 나를 더 옥죄어 온다. 카드의 한도가 미동도 하지 않는 사이에 나는 수많은 묘수를 띄우다가, 결국 예비용으로 들고 다녔던 엄마 카드를 내밀게 되었다. 엄마 카드로 사는 엄마 선물. 그때의 비참한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딸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제대로 망가진 어쩔 수 없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조금의 죄책감까지 모두 덜어내기 위해, 대신 긁은 선물비용을 곧바로 계좌이체를 통해 엄마에게 보냈다. 그 짧은 순간에 되는 일이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나 어찌나 많은 생각을 했던지. 집으로 가는 길엔 이름 모를 눈송이가 떨어졌다. 따갑고 굵게 떨어지는 못생긴 눈방울들은 스며들지 않고 외투 위로 하나 둘 쌓여갔다. 온 세상에 하얗게 돌진하는 눈발이 진정으로 눈인지, 아니면 내 자격지심인지 구분할 심경이 안 되었다.
문 앞에서 눈을 탁탁 털어낸 나는, 우리만 아는 암호를 누르고 따뜻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랑하는 포근한 숨들이 살아 움트는 곳. 이제 막 퇴근한 엄마에게 징그럽게 어리광을 피워본다. 본인보다 덩치 큰 딸이 부리는 응석을 모두 받아주는 예뻤던 그녀의 손에선 다른 세계의 꽃내음이 환상처럼 퍼졌다. 수줍게 내민 선물을 소중히 받아 든 엄마의 얼굴에 싱그러운 웃음이 찬탄처럼 피어오른다. 그제야 비로소, 아직 남았을지 모를 나의 저주받은 일주일이 막을 내렸다. 운명을 다독이며 쌓아 올린 진득한 모녀의 사랑을 그 무엇이 막을 수 있으랴. 갓 나온 페스츄리 같은 견고함으로 엉겨 붙어 어떤 재앙도 끊어내는 뜨거운 그것이, 기어코 나를 어둠에서 구해주고야 만다.
그 순간, 나는 한치의 두려움도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