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집의 비밀
슬픔이라는 건, 어쩌면 말함으로써 쇠진되는 게 아닐까.
우리 집은 온통 파란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파란 벽지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땐, 벽지가 하얗지 않고 파란 데다가 빛이 아주 잘 드는 집은 아닌 것 같아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꽤 괜찮은 집이라는 생각에 점점 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들 인생에는 좋았던 첫인상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도 있고, 별생각 없던 만남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는 거니까. 나에게 파란 벽지는 그런 곳이었다. 어둡다는 첫인상을 이겨내고, 점차 따뜻하고 안온한 나의 집으로, 천천히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나는 글을 쓰다가 종종 새로운 단어나 어휘가 필요할 때, 가만히 멈추곤 우리 집을 둘러본다. 하도 뜯어봐서 이젠 바닥의 먼지까지 훑어봐야 할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크고 작은 숨들이 살아 움직이는 놀이공원 같은 이곳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좁은 방 안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는 나에겐, 집이 가장 큰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어딘가를 둘러볼 땐, 단연 색이 눈에 띄거나, 부피가 큰 물건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방을 둘러보던 중, 크기가 나와 얼추 비슷한 노란 꼬질이 곰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와는, 바야흐로 패기 많고 열정 넘치던 대학생 시절에 만난 사이다. 졸업 작품을 만드는데 소품으로 활용되었던 참에, 작업이 끝나고 나니 금방 골칫덩이가 될 심산이라, 나름 관심 있게 저 녀석을 지켜봤던 내가 당당히 등에 들쳐 매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집에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온 용기라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당차고 존재감 넘치는 모습의 늠름한 아이다. 그러나 저 곰이 내 눈에 들어온 건, 비단 그때의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나만 아는 비밀이 있다. 세상 파릇한 벽지들 사이에 자기 혼자 독보적인 노란빛을 띠고 있는 퍼즐 한 조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저 곰과 맞닿아 있는 찰나의 틈이다. 개나리색 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철 대지, 혹은 태양이 지닌 금빛 광채의 아우라를 가득 내뿜는 듯한 그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얹어주었다. 마치 있을 자리에 있을 게 아닌 것처럼. 한 편으론 끈질긴 껌과 같이 딱 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득한 근심이었다. 나는 물건을 한 번 모아놓으면, 그곳에 오래 두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커다란 곰을 그곳에 얼마나 오래 뒀으면, 곰의 노란 살결이 벽에 그대로 스며든 것일까. 내 작은 습관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태어나버린 녀석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저 끝에서부터 시큰해졌다.
부모님께서 알면 속상해하실 일이지만 정말 다행히도, 여태까지 그 벽지의 참혹한 진실이 드러날 일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저 녀석을 들어 올리기 전까지는 그랬었는데. 비밀을 만든 사람이 처음으로 성장통을 겪어야 한다는 가슴 아픈 전설이라도 있는 것일까. 어느 햇살 좋은 날, 흡사 비타민을 떠올릴 만큼 노란 물결이 뚝뚝 흘러넘치는 벽과 때아닌 조우를 했고. 나는 황급히 그 녀석을 다시 제자리에 두곤 곧바로 모르쇠를 시도했다. 물론, 야밤에 먹이 사냥에 나선 고양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행동도 빼놓지 않았다.
겉으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혹은 오히려 더 괜찮아 보이는 것의 내막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에, 그 실상이 어떤 것으로 잔뜩 물들어있는지 알 길이 없다.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좋겠지만, 누렇게 뜬 아픔이 자리 잡아 지워지지 않고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면, 그곳은 영원히 그렇게 변색된 채로 그저 남아있기만 할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의 마음에 빛바랜 벽지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벽지가 좋은 의미로써 추억처럼 간직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아픈 상처이거나 힘들었던 과거이거나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꺼내보였을 때,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벽지를 처음 마주한 놀람이, 생각보다 큰 불행은 아니었던 것처럼.
누군가의 큰 아픔을 절대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아픔은 그 어떤 다른 아픔과 비교해서도 안 되고 비교할 것도 아니기에. 그러나 원래는 작았던 어떤 일들도 계속해서 숨기고 감추다 보면 결국 크게 만드는 원인이,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거짓말처럼 말이다.
변해버린 벽지의 모습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색을 위에 덧칠하는 좋은 방법도 있다. 어쩌면 더 아름답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은빛 밤하늘로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쁘고 화려하게 바뀐 벽지보다, 숨겨진 벽지를 드러낼 의지가 생겼다는 소소하지만 결코 작지 않은 행운의 소식 같은 게 아닐까.
용기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찰나를 만나게 되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이제는 일부 변해버린 모습에 정체성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노란 빛깔 파란 벽지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 중이고, 그 고민의 실마리가 언제 풀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갈 것이며, 피하는 것보다 부딪히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나는 안다. 적어도 숨겨진 그곳을 언제까지나 숨어 살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현재는 모두 과거가 된다.
먼 훗날 언젠가 문득 지금을 떠올렸을 때,
지나간 현재를 후회하지 않길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으면.
그럴 수만 있다면, 사실상 변한 벽지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젯거리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