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미용실_2

머리칼과 삶이 뒤섞일 때 우리는 짐을 내려놓았다.

by 블루나잇

<전 편과 이어집니다.>


***


그리고, 뒤이어장한 기품 넘치는 구두 하나가 또각또각 울어대며 이곳 전체의 분위기에 긴장감을 돋운다. 겉모습이 제법 세련된 그녀는 중년의 여성으로 보였다. 여성이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 듯 일제히 직원들이 우수수 길을 내어준다. 기쁨의 미소를 잃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VIP 고객 정도는 되었으리라. 웨이브가 살짝 풀려있음에도 여전히 명품 같은 여성의 머리칼을 보며, 내 멋대로 그녀의 목적을 두들겨보는 사이. 미용실의 입이 이번엔 더 힘차게 열리더니, 이십대로 추정되는 청년 한 명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아마도 이곳에서 파티가 열리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받지 못한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주인이라도 되는 듯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이름 모를 생경한 감정을 느꼈다. 느닷없는 새 인물들이 출현하자, 나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관심을 다시 한 곳으로 모으는 연습을 한다. 미처 회한을 풀지 못한 미용사의 이야기가 나의 귀 끝으로 넘어가고, 그 위로 중년 여성과 담당 미용사의 새로운 시나리오가 쌓이고 있었다. 네일의 문양이 바뀌었다며 너스레를 떨던 미용사가 리액션의 스타트를 끊자, 중년 여성의 폭포 같은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들려오는 내용은 대략 이렇다. 본인이 최근에 시도한 주식이 크게 성과를 거뒀다거나. 사업가인 남편이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는 데다가 자상하기까지 하다거나. 관리를 하지 않아도 한결같은 몸매를 유지하는 선천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거나. 누가 들어도 행복한 삶의 표본으로 생각할 만한 이야기였다. 여성의 한 점 부러움 없는 삶을 강제로 알게 된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다 가졌네.’라고. 그 꿈같은 일상에 집중하던 미용사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입꼬리를 있는 힘껏 끌어올리다가 ‘어머 어머 좋으시겠다’ 라며 라스트 추임새를 남발했다. 우리의 속마음이 다를 이유는 나와 그 미용사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한 차례 이곳을 휩쓸었던 여성의 일대기가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비슷하게 입장했던 청년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데,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잘 지내셨어요?’, ‘네, 저 오늘은 이 사진처럼 해 주세요.’ 이내 자신의 손에 짐짝처럼 안긴 사진을 들여다본 미용사의 눈에 절망이 들어찬다. 나는 알지만 청년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찰나의 반짝였던 곤란을.

이내, 청년의 담당 미용사는 머리칼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이유, 두상이 다를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대며 스타일이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열심히 피력한다. 그녀는 차마 ‘손님, 이 사진은 차은우인데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해 그대로 입 안에 삼켰을 것이다. 그러자 익숙하다는 듯, 남자의 입술이 짧게 열린다. ‘괜찮아요.’ 그 말을 끝으로 둘의 상담 같은 상담 아닌 대적이 막을 내렸다. 첫 번째 스코어 무승부로 종료.

그런데,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각자 다른 개성을 마주 보고 있으니, 문득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사방에 흩어져 나뒹구는 누군가의 머리칼. 코를 찌르는 독특한 약품 냄새. 그리고 통유리창을 뚫고 선명히 내리쬐는 오후의 선물 같은 햇살까지. 그 안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삶이 정신없이 녹아들고 있었기 때문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미용실. 미처 앨리스가 될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숨죽이고 모든 것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새하얀 기대를 안고, 직접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희한한 곳을 찾아온 그들은, 어쩌면 헨젤과 그레텔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의 부스러기를 줍기 위하여 이곳에 왔는가.


잔잔하게 감긴 눈 위로, 따스한 빛이 내려앉았다. 이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온전한 빛깔. 바쁜 현대인들은 오후의 빛을 느낄 새도 없이 지금쯤 상사의 호통에 시달리거나,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휘청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에게 내 머리를 맡긴 채, 그렇게 여유를 만끽했다. 한참이나 자유를 유영하던 중에 고민의 언저리를 매만지던 그녀가 내게 묻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자르세요?’ 나는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요. 무슨 일이 있고 싶어서 여기 온 것 같아요.’ 때마침 울려 퍼진 커다란 드라이기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의 대답을 집어삼켰고, 뒤이어 들려온 그녀의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여러 커다란 음성들이 뒤섞여 그곳을 잡아먹고 있을 때, 팔천 원이었던 내 머리칼이 이만 오천 원이 되어가고 있을 때, 중년 여성이 자신의 갈 곳 없던 자랑을 모두 풀어놓고 있을 때, 그럼에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자녀의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을 때, 청년이 덤덤하게 건넨 사진 한 장이 미용사에게 당황을 선물했을 때, 매번 전혀 다른 스타일이 나오는데도 매번 유명 배우의 사진을 들고 온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곳에 방문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갓 잘린 그것들과 뒤섞여 비밀스러운 별을 향해 흩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쩌면 세상에 공감받지 못할 인생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우리들은 너무 열심히 살아갈 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잠시 짐을 맡겨둘 그들만의 이상한 공간이 필요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정성스러운 손길 위에서 내 머리카락이 춤을 추는 동안, 나는 이따금씩 상상했다. 어느 신기한 우주에서 화려한 양탄자를 타고 돌아다니거나, 새하얀 설원 위에서 잔뜩 쌓인 눈을 밟는다거나, 천국일지도 모르는 향기로운 꽃밭에서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발밑의 꽃을 피해 살금살금 걷는 일들을. 가위질을 타고 떠났던 여행이, 동화보다는 현실이고 싶었던 그 순간. 고요한 적막을 깨우는 한 마디가 들렸다. ‘끝났어요, 눈 뜨셔도 돼요.’ 그 말과 동시에 나의 이만 오천 원짜리 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모두 끝이 난다.


거울로 들여다본 전경엔, 말끔하지만 낯설어 보이는 또 다른 내가 앉아있었고. 그 옆으론 잡지책을 넘기고 있는 중년 여성이. 그리고 그 뒤로는 본인에게 내려질 스타일 선고를 괘념치 않게 받아들일 청년이 앉아있다. 무심코 했던 상상 때문인지 두 뺨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나는, 결국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치듯 카운터에 가서 섰다. 이 정도의 매무새라면,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커리어우먼처럼 보일지도 모를 거라는 희망을 품고. 외투를 꺼내주며 웃는 직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다짐한 듯 작은 마음을 꺼내보였다. ‘머리 마음에 들어요, 감사해요.’


이윽고, ‘또 방문해 주세요.’라는 간결하고도 힘 있는 답변을 끝으로 나는 황급히 미용실을 나섰다. 아직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도시의 헨젤과 그레텔을 뒤로한 채. 문득 시계를 보니 사십 분쯤 지나 있었다. 평소 자주 걷는 길목인데, 어쩐지 걸음이 자연스럽지 않고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낯익지만 새로운 세상. 비틀거리지만 곧게 걷고 있는 나.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은 결심이 서자, 근거 없는 용기 같은 게 샘솟았던 나는, 집 근처 번화가에 위치한 백화점으로 목적지를 정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리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싶을 때.

또다시 ‘이상한 나라의 미용실’에 가겠노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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