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미용실_1
아픈 일까지 모두 잘라주시나요?
이른 오전부터 거대한 꾸지람이 아파트 전체를 혼비백산으로 뒤흔들었다. 어느 층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모를 공사 소리와 더불어 천둥처럼 느껴진 한겨울 바깥의 빛이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며 계속해서 게으른 몸을 채근 댄다. 대체 왜 평일 아침부터 공사를 하느냐는 큰소리가 나오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근하는 평일에 공사를 하지 그럼 언제 하겠느냐는 속마음의 반박이 그 말을 코앞에서 가로채었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내 처지를 너무나도 쉽게 인정해 버릴 때면 나는 입을 꾹 다문 슬픈 짐승이 되고 만다. 평일 오전에 출근하지 않는 소수 인간에게는 애초부터 발언권 따위 쥐어준 적 없다는 듯이.
아직 잠에서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침대 위를 나뒹굴던 그 소수 인간은 일말의 희망을 바라며, 자신의 머리를 떠받들고 있던 베개 밑으로 얼굴을 쑥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내 얼마 못 가 숨을 크게 내뱉으며 머리가 용수철마냥 툭 튕겨져 나온다. 얌전히 보호받아야 할 땐 숨이 잔뜩 막히는 기분에 골머리를 썩다가도, 막상 자유로운 대지에 내던져지니 감당해야 할 일이 폭풍같이 몰아치는 것처럼 말이다. 갑갑한 베개 속과, 혼잡한 베개 밖의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던 나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한창 좋은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어딘가 언짢은 기분이 든다.
마침내 침대와 슬픈 이별을 실행한 뒤엔, 아직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포들을 깨우기 위해, 암막커튼을 걷어 새로운 맞선 상대인 도시의 햇살과 인사를 했다. 꽤나 낭만적인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은밀하고도 사적인 만남이 끝나면 화장실에 들러 얼굴 상태를 잠시 확인하곤, 거실로 곧바로 이동해 소파와 색다른 조우를 추진한다. 희대의 인기녀가 따로 없을 만큼 바쁜 나의 우스꽝스러운 로맨스. 이 정도 의식의 흐름으로 보자면,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으로 비치기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면서.
그와 동시에, 엉겁결에 마주 앉은 거울에는 태초에 갓 나온 인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인간은 아무래도 부끄러움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기 자신과 뚫어져라 대적하다가, 본인의 머리스타일이 문제임을 깨닫곤, 대뜸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은 집 바로 앞에 머무는 곳으로, 커트 비용이 무려 팔천 원밖에 하지 않는다. 평소 꾸밈에 대한 소비에 인색한 나에게 꼭 들어맞고, 요즘 시세를 따져보아도, 완벽하게 가성비 넘치는 가격일 터. 그런데 어쩐지 오늘따라 팔천 원에 내 머리를 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오전부터 나를 괴롭힌 장마 같은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집 주변의 미용실을 검색하던 나는, 팔천 원의 세 배가 넘는 이만 오천 원에 머리를 잘라준다는 곳을 발견하곤 한참 고민에 빠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정말 네가 여길 가야겠니? 단지 너의 기분이 꿀꿀하다는 이유로? 그치 가야지. 내가 엄한 데에 사치를 부리는 성품이 아니란 거, 물어보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오늘 같은 날은 좀... 하며 나와 내가 출연자인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고 그 결과, 누가 이겼을 것 같은가? 당연히 사치왕이 승리를 먹는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매번 꺾이던 제가 이겼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요? 다 필요 없고 제 기분이 먼저거든요.
전쟁 같은 고민을 마치고 이만 오천 원에 머리를 맡길 생각으로 들뜬 나는, 내가 가진 온갖 색조 화장품들을 모조리 꺼내어 얼굴의 빈 곳을 채우고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 고운 빛깔들이 초라한 마음까지 가려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내 머리를 담당해 줄 헤어 선생님이 내 속사정과는 반대되는 이미지로 나를 봐주길 바라는 바람으로. 모든 치장이 끝난 뒤에, 곧바로 집에 가지 않을 사람처럼 보이도록. 나를 열심히 쪼개고 또 쪼갰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내가 아닌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이만 오천 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미용실이 아닌 헤어숍이라는 이름으로 늠름한 간판을 띄우는 그곳은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시간 맞춰 미용실에 도착하니, 한 차례 고급스러운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여자들이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진 듯한 미소로 나를 반긴다. 보통 이런 곳은 스타일링을 맡아줄 선생님을 직접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일 년에 다섯 번 있을까 말까 한 충동을 머리 자르기에 사용해 버린 나는 급작스레 닥친 폭풍을 막는데 급급했기에 그저 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어떤가, 여긴 헤어커트 비용이 만 원도 아니고, 이만 원도 아니고, 이만 오천 원인 곳인데! (비꼬는 거 절대 아니고... 진짜 큰맘 먹은 거라서 설렜습니다. 제 맘 알아주시길 ㅠㅠ)
자리에 앉아있자, 내 머리를 요리해 줄 오늘의 백 선생님이 솜사탕처럼 옅은 웃음을 녹이며 이쪽으로 걸어온다. 낯을 가리는 내 성격 상, 이를 티 내지 않기 위해 싱긋 눈웃음으로 화답할 것이고, 그 뒤엔 아마도 그녀의 리드에 응하며 그녀가 미리 찍어놓은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그녀는 누가 묻지도 않은 최근 연애 근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의 하루에 녹아드는 수건, 침대, 머그컵 같은 류의 다붓한 마음을 건넬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적막을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그 사람이 꺼내어 놓는 배려가 고맙다.
그녀의 이야기에 온전히 몰두할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참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고민 아닌 고민처럼 흩뿌리게 된 말은 이거였다. 그 남자는 분명 본인에게 관심 있어 보이고, 본인 또한 관심을 언제라도 받아줄 의향이 생겼는데, 이런 마음을 먹기가 무섭게 둘의 관계가 멈춰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다 생겨버린 무언의 벽을 사이에 두고, 누구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탓에 둘은 결국 8개월째 씁쓸한 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녀의 고민을 두고 고민한다. 본격적인 연애로 넘어가기 전, 8개월이라는 다소 길게 느껴질 둘의 애매한 관계를 비교적 좋게 해석해 본다면, 여느 청춘 드라마에서의 남녀 주인공처럼 서로 사귀지는 않지만 애틋한 마음을 확실하게 건네고 있는 듯한 공통적인 신기루를 느낄 수도 있는 걸까? 그러나 그 당사자의 입장이 되었을 땐, 그냥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이 되는 거다. 되도록이면 그 남자가 지금 내 옆에서 머리를 만지며 갈 곳 없는 감정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이 소심하고 겁 많은 여자를, 구해내든 아니면 두고 오든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 본 그녀와 두서 없이 집 잃은 사랑의 꼬리들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 미용실 입구에 매여있던 웰컴 방울이 가볍게 짤랑이는 소리가 귓전을 두드렸다.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