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지만 스물아홉입니다

누구에게는 티끌일지라도, 나에게는 태산 같은 이야기.

by 블루나잇

자신이 가진 이름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존재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나에게는 ‘아홉수’ 같은 것. 늦은 퇴근길 코앞에서 놓쳐버린 배차 십오 분 간격의 버스라든가, 굳이 내 앞에서만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이내 나의 동그란 무릎에 파아란 멍을 새기는 얄미운 모서리라든가, 심지어 이른 오전 암막 커튼을 비집고 꼭 감은 내 눈두덩이를 저격하는 불청객 같은 빛줄기라든가. 이렇듯 대상이 불분명한 것들에 화가 날 때, 나는 ‘아홉수’를 찾곤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원망을 풀어놓을 샌드백이 필요했던 거다.


서른은 넘어야 비로소 인생이 풀릴 거라던 어느 점쟁이의 말을 지독스럽게도 잊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몸을 망가뜨릴 만큼 퀴퀴한 황사 바람 같은 날들이 계속됐기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정확히는 늙고 싶었다. 철 모르던 이십 대 초반, 열심히만 하면 될 거란 착각 속에 살던 내가, 사람의 시기와 사정과는 상관없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동아줄 쥐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자각해 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겪는 힘든 순간 중 하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때라는 걸 은연중에 깨닫게 되어버린 어느 어린 날의 나. 그리고 어느새부턴가 스스로 지쳐가는 걸 체감한 순간, 다시 돌아본 나는 그저 버티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일 년만 더” 라며 자신을 바로 잡고 속절없는 희망에 속고 그 희망을 또 믿고. 뒤통수 맞기 어언 30년, 아니 29년째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힘들 땐, 보이지 않는 영혼의 실체 같은 걸 믿게 된다. 그렇기에 눈동자 잃은 날 선 말들에 덩칫값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가 하면, 한 줄 모래알 같은 바람의 말에 혹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기도 한다. 지난해는 사실, 꺾이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마음이 연초부터 풀썩 꺾였던 한 해였다. 모든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겨우 건진 잿빛 동아줄을 손에 쥔 채 정처 없이 갈대숲을 헤매는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믿었던 건, 어쩌면 작은 안개였는지도 모르겠다. 뿌옇지만 금세 걷어내면 될 거라는 희망, 새까만 하늘 뒤에 수줍게 고개를 내민 은빛 조미료 같은 것들 말이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일 처리를 하던 중에 나는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된다. “2023년 6월부터 만 나이로 통일!” 뭐야 잠시만... 그럼 나, 다시 스물아홉? 그야말로 청천벽력. 좋지 않은 의미로 꿈처럼 다가온 일이었다. (정부에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감정일 뿐이며...) 그토록 바라던 서른의 문턱은 왜 그리도 멀단 말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빠른 생일 덕에 스물여덟의 커트라인은 가볍게 벗어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시련.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저 환희일 이 소식을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유난스러운 고민 때문이었을까, 마음 한편에 덕지덕지 붙어 은신처를 넓혀가는 종이 벌레를 키우는 것만 같은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예전에 봤던 드라마 한 편을 떠올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라는 작품. 여주인공이 열일곱의 나이에 코마 상태에 빠져 무려 서른이 되어서야 깨어난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녀가 겪었던 십삼 년 동안의 모든 단절과, 그녀가 없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던 평온한 세상. 그녀는 가히 상상도 못 했을 수년간의 절경들까지. 사실, 내 상황과는 전혀 상반되는 이야기다. 나는 오히려 시간을 벌게 된 셈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지 않게 느껴진 건 왜일까. 서로가 원하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을 원하지 않은 시기에, 흡사 시한부 선고처럼 내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사람인지라, 간혹 “오히려 일 년을 벌게 되어 좋은 건가?”라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기분을 느낀다. 갑자기 생겨버린 공백을 다시 끼워 맞춰야 한다는 생각, 한 살이라는 텅 비어버린 액자 위를 점선 없이 나뒹구는 퍼즐 조각들이란. 이름 모를 커다란 체스판에 혼자 올려져 승자도 패자도 스스로 정해야 하는 그야말로 어지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조용하게 살자"가 모토인 내 인생에 강풍을 불어 일으킬 새로운 숙제가 생겨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쌓지 않으면서 서른이 되기만을 바란다면, 그토록 바라던 서른을 맞이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란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어느 날 띄운 날갯짓.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 모르는 작은 깃털 하나가, 하늘 위를 애처롭게 빙빙 돌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내 삶의 행복 회로와 마주할 수 있길. 조금만 더, “일 년만 더” 버틸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길.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고, 운명처럼 이겨내야만 하는 시간이라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는 다시 살아보려고 한다. 늘 그래왔듯이. 아홉수?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대신 살살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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