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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Feb 11. 2023

[몽당 소설] 찢어진 달력

한 순간의 영원이 주어진다면, 부디 이별이기를.

살아내야 하는 기간이 사흘도 채 안 남았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지만 비단 그것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페인트칠이 다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벽에, 녹슨 물줄기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지난해 동네 가장 오래된 은행에서 타온 무심한 달력이었다. 그가 우리 집으로 업혀 들어온 날에 처음으로 한 행위는, 위태로운 자세로 자신의 목을 매다는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등에 지고 태어난 하늘의 숙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시간은 사람의 것보다 서른 배 느리게 흐른다고 했다. 노쇠한 몸체를 덜렁거리는 꼴이 퍽 볼썽사나웠으나, 그마저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업이었다. 지난날 본인이 저지른 패악의 대가로 치러야 할 죗값이었다. 그의 수감 생활은 고독하게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적적한 낙엽이 예상 못한 구둣발에 바스러지듯 그렇게. 좀처럼 끝나지 않던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내면의 껍질을 벗었으니 이제는 편안해졌을까. 그토록 원하던 가벼운 홑겹의 낭만이 되었을까.

     

때때로 커다란 글씨가 버림받은 우산처럼 투박하게 방구석을 전전하며 굴러다녔다. 나는 이따금 그것을 발로 차고 짓이기며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렸다.      


장맛비 소리가 언덕길을 쓸쓸히 넘나드는 어느 을씨년스러운 계절이었다. 며칠 못 지나 짓궂은 습관이 꿈틀꿈틀 재발하려는 기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남은 숨통마저 끊어버리는 일. 나쁜 마음을 품을 때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쾌한 이물감이 들었다. 참 끈질기구나.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평생 같은 곳에서 끝내 낡지 않는 불멸을 지켜보는 데에 이골이 날 지경이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죽어가는 것은 그들 중 나 하나인지도 몰랐다.     


······아직 이틀 남았는데 벌써 뜯고 지랄이가.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이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꽤 되었는데, 오랜만의 방문 달갑게 느껴질리 없었다.


그는 늘 취해 있었으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악한 무지의 형태로 우리 곁에 엉겨붙어 있었다.  다정은 꿈에서도 없을 일이었고, 나를 통과하는 유년의 지옥이었다. 미웠으나 원망할 수조차 없었다. 엄연히 말하자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떠난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리 부정해도 그는 검붉은 핏줄을 지울 수 없는 내 아버지였다.   


하루든 이틀이든 기어코 살아남아 채우기를 거부하는 그것을, 나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찢어버렸다. 한순간 제 몸의 반나절을 잃은 종잇장이 뜨겁게 울부짖으며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를 드러냈다. 새끼를 잃은 부모의 분노 섞인 울음 같았다. 미처 따라붙지 못한 잔해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내질러졌다. 서툰 어머니의 손에 마구잡이로 잘렸던 앞머리처럼. 쳐다보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을 닮은 내 얼굴처럼. 구슬프고 처연했다.

    

달력을 찢는 것은 악의 흔적으로부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를 방관의 억압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이다. 몇 번이고 살아 돌아온대도 나는 그를 끊어낼 것이다. 내 어머니를,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켜낼 것이다. 이번의 헤어짐은 최초이자 최후의 이별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고, 이곳에 버젓이 살아있다는. 그때 처참히 부서진 당신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증명의 생채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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