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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Feb 12. 2023

[몽당 소설] 노란 장판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이다.

하얗게 움튼 수증기가 작게 뚫린 유리창 양면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쩌면 한 데 엉겨 붙어 뜨겁게 몰아치는 더운 입자의 세포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에 동질감을 표하듯, 마치 바닥에 흡수된 것처럼 보이는 노란 장판이 일순간 펄럭이며 가난한 숨을 거듭해 쉬었다. 언뜻 보면, 올록볼록 철 지난 겨울 점퍼를 껴입은 것 같기도 했다. 달뜬 숨을 내뱉으며 헐떡이는 그것을 보고, 살아있는 목숨을 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살려내는 방법은 더운 공기를 빼앗는 것일까. 추운 공기로부터 지켜내는 것일까.   

   

이따금 여자의 집에는, 퀴퀴한 허파의 바람과 함께 지옥의 울림이 찾아왔다. 호흡이 어려울 만큼 불쾌한 냄새를 동반하기도 했으나, 보내오는 민폐에 비해 염치없이 들이닥치는 그들의 태도는 몹시 무자비했다. 그야말로 무람없고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여자는, 길바닥 개미 한 마리의 목숨도 쉬이 여기지 않고자 평생을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업신여겨도 마땅할 흔적들을 막상 모른 척하려니, 권태의 연민을 따라붙는 참혹한 서늘함이 고개를 내밀 연거푸 뜨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럴 때면 여자는, 지친 몸으로 그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성의 있는 일별을 건네곤 했다. 수다스러운 입을 다물게 한 뒤 휴식을 취할 심산이었다.


숨을 쉬는 것. 그리고 숨만 쉬는 것. 여자에게는 다를 바 없는 삶이었으나, 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었다.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낡은 노란 장판이 되어버린 여자를, 이제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한 마음을 끌어안고 두 눈 깜빡이는 노동을 지속하는 것. 어느 살갗에 닿지도 않을 짐승의 울먹임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 잔뜩 움츠려 있다가도, 틈과 틈이 이어지는 경계를 지날 때마다 쇠약해진 최소의 뼈대를 최대미안한 몸짓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롯이 멈출 때면 지나간 후회와 미련의 반추가 천장을 파고들며, 짙고 탁한 회갈색의 그림자를 피워냈다. 여자가 산전수전으로 먹이고 입히며 키워낸 새끼들은, 일 년에 한 번 꼴로 유선의 기계를 빌려 귀찮음 섞인 의무를 보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앵무새가 되어 수십 년간 학습된 언어를 반복해 뱉었다.


"엄마는 잘 있다, 걱정 말고 살아."


세월의 나이를 머금고 완연한 바닥이 되어버린 그녀를, 이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먼지 쌓인 전화벨 또한 한동안 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여전히 같은 땅에 몸을 뉘인 채,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들을 호흡할 뿐이었다. 적막이 감도는 그곳엔, 희끗한 노란 장판과 아직 숨지지 않은 시계초침만이 뻑뻑 울어대며 발 디딜 곳 없는 성화를 피워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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