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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Feb 23. 2023

[몽당 소설] 네모의 집

그 안의 너와 나는 행복 그 자체였고.

그 애가 그려준 네모난 프레임 안에서 나는 참 예뻤다. 향긋했고, 사랑스러웠다. 세상 밖으로 나가길 꺼려하는 나를 몇 번이고 일으켜 준 사람이었다. 본래의 습관을 버리기 어려웠던 나는 네게 볼멘소리 섞인 짜증을 자주 내뱉고는 했지만, 싫은 적은 없었다. 그 애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내 성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오래 고인 것 또한 지겨워한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쩌면 알면서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는 티를 내는 순간 허술하게 맞잡은 손을 놓게 될 것만 같아서, 살구꽃 닮은 얼굴로 애써 괜찮다며 웃어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사진 찍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투명하고 동그란 렌즈 너머로 박제되어 유리평면에 비친 나는 언제 보아도 퍽 낯설었으며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못난 무늬들을 투박하게 찢어 못생긴 그림 숙제의 단면으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만 같았다. 주인에게마저 버려진 작품들처럼. 그렇게 사진 비관주의에 휩싸여 살던 내가, 네모 안의 나를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다. 그 애가 내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함께 담기거나 그 애가 나 홀로 빠트린 그곳의 나는 유독 반대편 환상의 세계에서 온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볼썽사납고 작게만 느껴지던 네모 안은 또 다른 결계를 감싸 안은 말캉한 스펀지 집이 돼 주었다.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사진은 찍어주는 사람의 시선이 섞이는 것이라서, 찍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품을 내어주고 있냐에 따라 사진에 담기는 피사체의 모습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어릴 적 억지로 찍힌 듯한 내 사진들은 대부분 울상에 찡그린 채였는데. 내 가족은 전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확실한 건 그 애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 어쩌면 명확한 자신보다 희미한 나를 더 원했으며, 나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을 의지가 두 눈에서 살아 숨 쉬곤 했다. 무기력한 몸을 일제히 튕겨져 나가 마룻바닥에 쏟아 내린 그 애의 흔적들을 매만져 보았다. 간혹 제자리를 잃은 어폐의 낱말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유약한 울타리를 구잡이로 두들겨대는 기분이었다.   


그 애와 마셨던 미지근하고도 애매한 맛의 홍차를 입 안으로 한 모금 털어 넣었다. 제까짓게 남은 추억이랍시고 그간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지난 기억들까지 문득 이끌고 나타났다.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나를 그토록 살갑게 보듬어 준 사람이었으니, 어디선가 그보다 더 섬세한 사랑받으며 불안 없는 관계 속에서 편안하게.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너는. 그런데 아직 나는. 네가 찍어준 사진을 지우지 못했고, 아마 네 자리를 다른 누가 채운다고 해도. 어쩌면 영영 삭제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단지 그 안의 지나간 내가 더없이 영롱해서. 행복해 보여서. 다시는 없을 그것이라서.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건 결코 너 때문이 아니니까, 내 생각하지 말고 살아 지금처럼.      


깨진 유리조각들이 한치의 여백도 빼놓지 않고 침투하며 사방을 뒹굴었다. 아니다, 그마저도 나라는 변수 하나는 가까이하지 않기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굴러 내리며 필사적으로 자신들을 보듬었다. 이미 부서졌는데도 지켜낼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산산조각이 되었을 뿐,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창을 뚫고 들어온 봄의 빛깔이 바스러진 그것들을 비추자 건강한 윤기를 지닌 듯 번들거렸다. 황홀할 만큼 반짝거렸다. 보석도 아니면서 자신들이 귀한 존재인 줄 아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참을 고민하는 내가 서있었다. 손에 죽은 듯 잠들어있는 이 비행기 티켓은 당장 내일이면 나를 모로코에 있는 어렵고 한적한 골목에 내려놓을 것이다. 지금 나는 무슨 고민을 하고 있지. 오늘의 내 선택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결단임에도. 나는 옛날 그 자리에 발 묶인, 과거 잃은 부랑자가 되어 한참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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