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by 블루나잇

그놈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어제는 손 없는 날. 빈곤한 옛 시인들이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굶어 죽어버렸다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 같지도 않은 그놈들이, 이곳저곳 낯짝을 들이밀며 기웃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제 갈 때가 되었나 보다. 먼발치서 낙엽이 떼거지로 흩어지는 풍문을 본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인정할 수 없는 몰락. 때 묻은 낙하. 그간 쌓아 올린 명예는 대체 어느 곳에 칭칭 동여맨 몸을 내리꽂았다는 겐가.


눈앞을 방해하는 시커먼 무리들이 저잣거리로 웅성대는 흐름. 아플 때 아프다 말하지 못한 건 숙명일 뿐이었다며. 그마저도 죄가 된다는 판결을 듣고 동네 험악한 악귀들이 한데 모여 잔치를 열었나 보다. 신명 나는 장례식. 니들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관심 둘 여력도 기운도 없지만은, 만약 갈라지는 목숨줄이 네놈들 선택에 달린 거라면. 하는 수 있나. 황천길 가는 마당에 누굴 믿을 수 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어휘가 아직 숨통 붙은 목젖을 둘둘 감는다. 숨이 턱 막혀서 진정 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순간. 편백나무로 지은 관까지, 눈 뜨는 삶은 얼마나 남았나.


아이고 형님, 어쩌다 이리도 서글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셨단 말입니까. 네 놈의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금물이 뚝뚝 가슴팍 위로 흘러내릴 때. 나는 떠올렸다. 사람 인생 팔자가 악착같은 노력만으로 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악하였거나 너무 착하였거나 하는 십성의 기운은 결코 공존할 수 없고 그 안에서 뒤엉키며 반드시 공존한다는 것을 말이다. 네 눈물은 진짜더냐, 어쩌면 내 도포 안에 공손하게 들어찬 엽전 몇십 냥을 노리는 천벌 받은 마음은 아니더냐.


이 목숨 끊어지기 직전까지

사람을 의심하고 미워하는 나야말로

그런 인생이야말로, 천벌이 따로 없구나.

아우야, 형이랍시고 형답지 못한 언행에 잔챙이 닮은 어깨만 내어줬단 게 참으로 미안하다. 진실로 미안한 것은, 사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 하는 나의 오만인 것 같았다. 인간들은 어리석어서 자신의 행운 보따리를 기억하는 일은 많아도 최후를 상기시키려는 짓은 하지 않더구나. 나 또한 그랬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두려운 건, 어쩌면 너무 초라해서가 아니었을까. 성대한 죽음의 발톱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비루하고 조잡한 풍경이 나의 끝이라는 게, 억울해서 비명조차 나오질 않는다. 모든 인간들의 끝일지도 모르겠다는 편협한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나는, 진정 허술하고 보잘것없구나. 그래, 나는 이런 인간이었지.


깨달음은 죽는다고 절로 얻는 게 아니었다.


놈들이 온다. 낡은 갈색 대문을 두드리는 억센 손길이 관자놀이를 타고 둥둥 울린다. 나는 이제 저놈들의 인간.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을 인간 아닌 인간. 죽은 인간. 문득 죽기 위해 살았나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어 살아가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꺼풀이 약해지고 의지의 알맹이가 수그러든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걸쇠를 꼭 그러안은 손이 뱀의 파동처럼 덜덜 떨려서 마음조차 모자란 빈털터리같이 느껴지는구나. 너라면 어떨 것 같으니 아우야. 아니 그전에... 내가 건넨 편지는 네게 진심 어린 애수로 닿았더냐.

온몸을 곧게 펴고 누워있으니, 내 몸에 물이 차오른다. 짜디짠 염전을 만들어 내던 오목한 밤의 호수. 시린 눈동자의 숲. 그 안에 오만가지 감정들이 빠져 헤엄치는 동안, 물은 쉴 새 없이 공급되어 흐르고 저들끼리 다투며 흘러넘치기를 반복했다. 밀치고 밀쳐지며 걸어온 죄악의 하루들이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죄를 짓지 말고 살라던 사람들의 충언이 귓가를 타고 빠르게 전이된다. 어깨를 넘어서 심장을 타고 신장을 허벅지를 더 나가선 복숭아뼈까지. 잘못 뿌리내린 인생의 밑창을 지독하게 훑어낸다.


죄짓는 삶을 산다는 건,

모든 생의 마무리가 온통 죄로 물든다는 뜻이려나.

끝이 그런 사람은, 전체가 그런 사람.

끝이 그런 사람은, 모조리 그런 사람.

누가 나를 기억해 줄까.

누가 나를 사랑했을까.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이기적이고 나쁘게 살았지만, 나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건 짙은 사랑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습니다. 그놈들에게 히마리없이 끌려가는 지금을 나는 기억할 것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난다면...


최후의 심판만을 남겨둔 공터에서. 시끄럽게 풍악을 당기는 몸짓, 세차게 울부짖는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우고. 돌고 도는 살아있는 심장의 사람들. 누가 죽든 말든, 누가 살든 말든. 춤을 춘다. 기묘한 하룻밤 사이, 꿉꿉한 새벽 공기를 뚫고 인간의 형체를 닮은 까만 연기가 하늘 위로 드높이 솟구치던 때. 어느 집안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핏덩이의 사내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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