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나잇 Nov 07. 2023

아궁이

아재요, 어젯밤 공들여 데워 놓은 아궁이 뜨끈한 아랫목을 보고, 웬 잡놈은 난테 시부저기라며 염치없이 마른 낯짝을 붙여놓대. 낯선 밤 푹신하진 않더라두 편안히 재워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행실도 아니고, 이것 참 심장 한 구석이 싸르르 울며불며 서러웁디다. 깨고 나고를 반복하는 삶이 그리도 속절없다는 건 내 애초에 알고 있었다만, 썰렁한 바람 뉘우치는 잔향이 콧구멍을 타고 뜨내기처럼 몰려올 때면. 유독 퍽퍽한 서글픔을 느껍니더.      


어뜩비뜩 구부러진 것은, 얼굴이 죄다 비틀어진 허수아빈지. 것두 아니라면 살아생전 술 주전자에 기대어 살던 진짜 아빈지. 이젠 그딴 것들 다 뭐시 중요하소. 해마다 못쓰는 나뭇가지 몇 차례 꺾었지예. 떨어진 감꽃을 맨손으로 줍기도 하며. 흔한 떡국도 끓이지 않구서 늙음을 세어가면서도, 늘어나는 건 이유 모를 뼛성 뿐이라 계절을 넘길 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늘상 체감하곤 했지예. 일몰 따라 증발하는 생이라 여기면 쬐끔은 가슴 아리면서도. 하모, 지난날에 비하면 온통 예삿일이었구. 무엇이 힘들고 무엇이 힘들지 않은지 감각으로 알아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가장 힘들더이다.      


불구덩이 같은 노랫말은 음절이 자꾸만 늘어납니더. 보고픈 옛 가수나들은 귓불에 뜬 솜털 한 줄 코빼기도 안 비춘지 좀 됐어예. 헛된 기대라도 없음 우찌 살아갈 수 있겠습니꺼. 폭음 닮은 얼굴로 벌겋게 달아오른 고추밭을 거닐어 보다가 며칠밤은 그곳에 드러눕고 싶단 생각을 해요.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곳은 내 무덤. 거절하겠지예, 그럼 나는 다시 아궁이로, 아궁이로. 거름 대신 딱딱한 장작 한 모숨으로.      


고향이 달리 있나. 돌아갈 수 있다면 산중턱이든 바다 건너든 미지의 그곳이  고향이지. 그나저나, 어젯밤 그놈이 또다시 들이닥쳐 난연한 행색으로 밀려들어온다면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천연덕스럽게 투덜대며 늙은 나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는 그놈을... 사람도 아닌 주제에, 어머니 하고 가슴 뛰는 호칭 불러재끼며 반가운 실상을 하구서. 나는 그 애를. 잊음직하면 찾아오는 놈을 내칠 수도 없어 근심이 그득. 이쪽 면엔 덕지덕지 미련이 붙었는지도 모르구. 저만 기다리며 살다가 전부 해져버린 옷매무새까지두.


그놈 살아생전엔 부엌을 참 좋아했는데. 이젠, 어여 처먹으라 채근대도 밥 한 술 뜨지 않어요. 지가 좋아하는 반찬을 전부 일궈 놓아두. 고구마순을 손수 까다가 소금 툭툭 참기름 사악 둘러 제 어미 손맛으로 떡칠해 놓아두. 그리 좋아했으면서두. 어쩔 땐 자리에조차 있었다 없었다 행방이 묘연합니더. 그게 더 아픈 거지예. 언젠가는 아궁이에 불이라도 뗀답시면, 뭐시 그리 즐거운지 할근거리며 옆을 떠나지도 않았어예. 꼴 보기도 싫구, 영 볼썽 사나우니 저리 썩 꺼지라며 면박주어두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더.


어쩜, 내가 그 애의 고향일는지. 돌아올 수밖에 없는.


다 지웠다 생각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불러재끼는 건, 그리운 어미 마음일지도 모르겠군요. 곰살맞은 입꼬리 딱 한 번만 쓰담는 게 소원이었는데, 막상 들춰지니 오랜만이라 괴상한 소격감이 들대요. 새벽녘이면 쪼매난 궁둥짝을 터억 붙이고 앉어 밤새 속살거리는 그놈을 보다가 잠들겄지요. 이렇게 일찍 갈 거였음 차라리 데리고 가달란 말은 귓등으로두 안 듣구서 말예요. 웃는 게 조금 미워예, 그리구 많이 이쁩니더. 귀한 내새끼 하며 끌어안구 싶어두 이내 사라져 버려서. 헛헛한 가마솥에 애꿎은 토종닭 몇 마리 쑤셔 넣었지예.    

  

청승맞은 어미는 밤낮으로 그저 아궁이만 홀짝거리며 뒤적대고. 그놈이 오구서, 그놈이 오구서. 햇살 같은 그놈이 오구서.

작가의 이전글 RE: 10월, 마지막,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