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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Oct 31. 2023

RE: 10월, 마지막, 날

시월이 금방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는 듯 마음이 이상합니다. 주머니에 시린 손을 구겼더니 잡히는 게 꽁꽁 얼은 휴지 파편뿐이라서. 아팠어요. 저는 요 며칠 그렇게 살았어요. 언제 누군가의 밖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을. 계속 살았어요. 외로워서 사람들을 만나봤으나, 그게 날 더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내게 되실는지요. 누구처럼 퍽 외롭고 쓸쓸하거나 반기를 들며 허연 이빨을 잔뜩 드러낸 눈꽃 같은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르겠지요. 삼키고 삼켜지고. 선생님도 가끔은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기다리십니까.


두 무릎을 포개어 안고 잠시 생각했어요.

감았으나, 눈 코 입이 전부 뒤틀리는 기분.

글자 속에 갇힌 것만 같은 허공의 눈동자.

쓰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 낱말들.


온데간데없는 흔적은 당신의 증거였어요.

엊저녁 꺼내둔 서랍에도 탁상에도 그 어디에도.


심장이라는 장기는 정말로 사랑을 닮았을까요.


원치 않아요. 간절했던 게 언제였는지, 바라던 건 뭐였는지. 마음만 깊숙해지고요. 머릿속 도로가 꼬불꼬불 흐린 뱀처럼 몸을 웅크립니다. 경계라는 건 자꾸만 나를 밀어냈어요. 세상 밖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처럼. 실은, 벼랑 속 미소 띤 적군의 얼굴을 하고서. 무얼 믿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새벽 비행. 차표는 편도로 끊으려는데. 선생님은요. 제 목소리를 들어도 이젠 아무렇지 않으신가요.


숲이 너에게 선물하리라, 모든 삶의 근원은 흙으로부터. 바닥은 바닥을 낳는 게 아니다. 누워서 네가 바라볼 곳이 비로소 하늘이 될 것임을. 천장을 잊지 말고 살거라. 자연, 자연, 사람. 자연이 두 개고 사람은 하나. 어떤 사람들은 피력으로 귀중함을 표현한다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피력으로.


어떤 필연으로.


이미 맺어진 거라면 눈물이 흘러도 손바닥을 내밀지 않을 거예요.


축축하군요.

언제쯤 익숙해질까요.

 

슬픔을 받아낸 사람이 반드시 물든다는 생애 첫 이로움. 울고 싶은 사람에겐 눈물이 소원일 텐데. 죽고 싶은 사람에겐 정녕 죽음만이 운명일까요. 환히 웃으며 돌아가는 입동굴. 곱게 휘어지는 팔자 주름. 하얀 사신들이 늙은 방문을 두드려도 염색은 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그 자체로 아름답거든요.


신경이 곤두서는 날에는 미움으로 내가 가득해요. 싫었던 이유는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아 해서. 그리하여 나를 어쩔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사실이 두려워서. 솟구쳐서. 원망도 한의 일종이라면 나는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흘러도 흘러도 꼬리를 저물지 않는 물결을 퍼트릴 수 있는 겁니까. 풀어놓고 싶어요, 살아내야 할 단추가 너무 많거든요. 목젖이 간당간당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순간에도. 잦았어요. 참았어요. 혹시 나는 지금 죽었습니까.


간밤엔 빵 속에 파묻히는 꿈을 꾸어서 행복했는데, 갓 구운 포실하고 퀴퀴한 밀가루 향. 아니 행복하지 않았는데. 욕심 때문에. 그 빵을 주머니에 욱여넣고 넣는데 그곳은 자꾸만 비어있고,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떠나가는 순간을 내가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그걸 알고 내린 저주 같았어요. 손길을 벗어나고, 동공을 피해 떠나가고. 10월도 그렇겠지요. 붙잡는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가 너무 밝아 보여서,

그늘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나 홀로 까맣게 그을려진,

숱한 밤을 껴안은 그런 얼굴로.


곧 떠날 거잖아요.

10월도, 마지막 밤도.


수억 년을 보았으나,

단 한순간을 닮은 적 없던.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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