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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Nov 13. 2023

안녕하십니까

같은 얼굴, 같은 표정. 같은 온도로 열리는 너. 너의 입술. 끝에 매달린 희고 메마른 낯익은 물방울들. 너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고 말하는 너. 그게 안정적이라 좋으면서도 두렵다고 말하는 너. 두려운 이유를 날려버리기 위해 더욱 두려운 일들을 벌인다는 너. 예측할 수 없음을 즐기지 못하게 된 사람들. 그 애에게 최면을 거는 순간 고개는 떨구어지고, 올라가는 아치형 입꼬리는 싸움이 벌어지던 옛 원형 경기장을 머금은 채로.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 저는 아직도 살아있어요. 이것 좀 보세요 말도 안 되게 멀쩡해요. 라고 말하는 너. 바라보다 말고 다 식어 퍽퍽해진 호밀빵 한 조각을 네 입으로 쑤셔 넣는 나. 살리는 너, 살아있는 나. 쉬지 않고 돌아가는 입체 회전목마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하는 삼천 오백 연도의 사람들. 멈추지 마. 죽지 말란 말야. 계속, 계속, 보란 듯이 폐쇄되어 돌기만 하는. 시계를 입은 바퀴.     


자세히 꿰뚫어 보면 우리 모두 물 아래 오리를 닮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리배라고 해야 할까요. 수시로 다리를 굴려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다만, 그건 아주 화려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환상을 보는 꿈나무들은 그게 가능하대요. 그렇다면 우리는 버림받았다는 상실에 파묻혀  매일을 보내야 하는 겁니까. 발을 굴리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져서. 헛헛하 공중을 돌 듯 바닥을 차내야 하는 삶의 피폐한 순간들을 자꾸만 망설이고. 천장을 바닥 삼아, 거꾸로 뒤집기도 하면서. 힘내라는 묘약은 어디서 점철된 속절없는 희망 고문인지, 최근엔 신약으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만 점점 늘고 있어요.     


안녕하십니까. 안전하십니까. 안정적입니까. 앉아서도 우는 인생을, 누구에게 치이고 가려져야만 하는 인생을. 얼마나 지나야만 그것의 앞에 “내”, “나의” 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창피하지 않게 될까요. 너도 나도 주인공인 세상에서 더 이상 안전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광고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해칠 테고요. 끝이 아니겠죠. 맞서 싸워봤자 집어삼켜질 거니까요. 차라리 눈앞에 알짱거리는 짙은 녹색 괴물이나 검붉은 종족과 손잡고 하나가 되는 편을 택하는 게 낫겠습니다. 적어도 그들이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상담이 끝나는 날마다 생각을 했어요. 아무런 고통도 갖지 말라고 일컬으셨다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암묵적인 신호가 눈동자까지 전달됐으니 그날도 여전히 잠들 수 없었던 거였고요.    

 

차라리 추운 게 낫겠습니다. 없어질 존재감보단.     


짙은 회색빛깔 차를 한 잔 건네는 사람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고 말았군요. 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라한 기분이 썩 달갑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들은 당신에게 원하는 게 있거든요. 어쩌면 비싼 구두, 명품 시계 따위일지도 모르죠. 명석한 두뇌, 탁월한 아이디어. 그마저도 아니라면 아름다운 매무새. 쉽고 달콤한 마음. 예전부터 갖고 싶었다고 대놓고 혀를 굴릴지도 모르죠. 왜 빼앗는 사람에게 뺏기는 사람이 쩔쩔매어야 합니까. 모쪼록 함부로 갈취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매사에 당신을 쪼아대는 오로라 눈빛들로부터 보호하세요. 당신이 당신을 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구해낼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잡혀온 것처럼, 이렇게 묶여 허름한 새장에 갇힌 제3의 생명체로 운 좋게 살아남아 결국은 죽어가는 것처럼.     


안녕하십니까.     


매일 아침 삼켜진 방에서 눈을 뜨고, 바지런한 사람들은 새벽 운동이라는 주체 활동을 하고. 몇몇 도태된 뒷모습들은 짜디짠 눈물 속에 빠져 삼십일의 숫자가 빼곡히 적힌 한지를 하염없이 바라만 보기도 하고. 모래알 같은 밥알을 챙겨 먹고, 먹다가 세는 날도. 어느 날은 입맛이 짐승처럼 돋아 수중의 먹거리를 마구 욱여넣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이 사람들을 말하고. 자신을 닮은 자신과 다른 말투들에 베이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햇살 좋은 날엔 숨을 깊게 들이쉬어도 보고. 제법 서늘한 바람엔 옷깃을 여미기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은 바람을 바람에 실려 내비치기도 하며. 웃어도 웃어도 사랑하는 이를 피워낸 작은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삶을 희한하게 바라보면서. 행복해도 되는 거였구나.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곤 엷게 미소 짓는 너.


사실 너는 그런 것들이 참 부러웠구나.     


하는 나. 모든 건 질투를 삼킨 뱀의 혀라고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너. 그 순간 내가 보았던 너는 반짝이는 별빛 같았지. 너는 마주했고. 슬플 때마다 넓은 종이에 그려 넣었던 모든 삶의 투박하고 지루한 것들은 사실, 네가 간절히 원하던 바라던 깨우치고 싶었던 평범이었음을. 평범을 버린 사람들, 평범을 꿈꾸는 사람들. 찬란한 보석이 조각조각 박힌 수레바퀴가 헛발질을 노니는 사이. 설겅설겅 소리를 내며 아픈 발을 질질 끌고 기어가는 사이. 그 속에 비친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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