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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나잇 Dec 31. 2023

떠나보내기

잘 가. 돌아보지 말라는 말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네게 그다지 좋은 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네 생각은 다를까. 같이 걷는 걸음만으로도 구름 겉에 밝게 타오른 햇살 같았을까. 쉽지 않은 선택은 오랜 여운이 남아. 얼마나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 이곳에 돌아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눈이 녹는다. 물이 되는 소리. 죽는 건지, 재회하는 건지 누구도 모르겠지. 우리는 그것의 실체를 아무렇지 않게 발로 짓이기다가 서로 손을 마주 잡는다. 찰나의 행복이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네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동안, 시간은 지구를 천 바퀴 정도 돌았어. 그러다 어쩌면 마시멜로우가 되어버렸나. 뭉쳐질 수 없는 왜곡은 불확실의 나야. 서른 살의 갑옷은 제게 걸린 저주를 품에 꼭 끌어안았지. 이런 내가, 어떻게 그런 네게. 물컹하게 만져지는 울음들. 조용히 곁에 살고 싶었어. 달게 토닥이며, 너는 할 수 있다고. 그게 내가 아는 네 표정이라고 전하고 싶었지. 그런데 지금 내 꼴이 참 그래. 내가 늘 이래. 주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입김들은 목 없는 귀신이 되었대. 용기 내려다 되려 멀리 쫓겨났다더라.     


손을 잡아 줘서 고마웠던 일. 또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해주던 머리칼. 나는 우리만의 추방이 좋았어. 눈빛에 울지 않고 초점을 잃어도 괜찮았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자주 추웠던 걸까. 무너진 기대에도 주저앉지 않은 우리를 떠올리면 눈가에 엄한 이슬이 범람해. 어젯밤 꿈에 네가 나왔지. 마주 보며 떡국을 삼키는데, 연거푸 턱에서 피가 흐르는 거야. 선홍빛. 너는 웃어. 괜찮대. 어떤 입모양이 나를 부르는데. 네 글자였어. 너를 믿어. 나를 믿는다고? 태어나 처음 그려본 획이었지. 선이었지. 푸른 응원을 닮은. 네가 나를 살게 하려는구나. 영영 이별은 없도록, 엉겁결의 실패가 쌓인대도 포기 없이 그러하도록.     


신뢰의 화살을 반대로 쏘았어. 그날 밤 먹은 국이 조금 식었거나, 그래서 내가 체했거나. 사실 그 국물은 핏빛 절망이었대도. 상관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봐. 절망을 삼키고 우리는 우리가 되었잖니. 나는 여전히 네 웃음을 보고 내일의 나를 그리는 중이야. 무얼 삼키든, 시곗바늘처럼 돌고 돈다 해도. 도달하고 싶은 너는 나에게 유의미한 목적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 나, 이렇게 걸을 수도 있어. 똑바로, 차선을 함부로 넘지 않고 뒤뚱거리지도 않아. 보고 싶을 땐, 보고 싶다고 외칠 수도 있어. 묵은 결실의 처분. 깊숙이 들러붙은 피폐는 여전히 가난하구나. 괜찮지 않아서 괜찮지 않다고 말할 줄 알게 됐지. 외면하지 말래서 곧은 시선을 유지했어. 너무 길고 습했던 남쪽 숲의 겨울잠. 에메랄드 아침이 온다. 이제는 끝내야지.     


내일이면 일어날게, 조금만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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