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라면 입겠어요.

박탈된 자유

by 청연

서랍장을 열고 가장 위에 놓여있는 흰색 반팔티를 꺼내 입고 외출했다.

왠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착용감이 어색하다.


화장실에서 큰 거울로 보니,

옷이 작다.

티셔츠가 주는 편안함은 없고, 오히려 뭔가 계속 어색한 게

이 옷은 명백히 나에게 작은 옷이다.


어째서 작은 옷이 내 서랍장에 들어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가 기억났다.


아내는 할인행사 때 싸게 구입했다며 셔츠 몇 개를 꺼내놓고 보여줬는데,

안타깝게도 자기한테 조금 크다고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에게 큰 옷을 나에게 입으라고 강요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작았다.


옷이 작아서 입을 수 없다고 말하는 나에게 아내는,

"무슨 소리냐. 잘 맞는다, 매우 어울린다. 요즘은 다 이렇게 입는다"며 입을 것을 재차 강요하였고,

더 이상의 반항은 아무 의미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꽉 끼는 티셔츠를 어쩔 수 없이 입었더랬다.


그때 한 번인가 입었던 이 옷이 다시 내 서랍으로 들어와 오늘 다시 입게 된 것이었다.


여전히 작고 불편하다.

게다가 지금 만져보니 오른쪽 어깨 부근에 작은 구멍까지 나있다.

아내가 할인을 통해 구입한 옷을 강제로 할당받은 나로서는, 어깨의 구멍을 핑계로 이 옷을 안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심한 희망을 품어본다.

점심 먹고 앉아있는데, 유독 배가 더 나와 보인다 -.-;;




독재에 저항하려는 작은 의지 ...........................청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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