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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l 03. 2024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희망'

나를 찾아오지 않는 '희망'

‘희망은 치열한 싸움’ 이라는 시를 썼다.

https://brunch.co.kr/@blupond/64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고,

희망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은 실현하는 것이라고...

 

 ‘기다리면 찾아오는 희망은 없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표현은 희망이라는 단어와 맞지 않는다고 한다.

희망은 둘러보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래서 희망은 나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희망은 늘 희망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왜 내 삶은 항상 희망적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희망이란 녀석이 저절로 다가오는, 그런 희망적인 날을 기다리고만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인가?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버렸다.

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그 상자를 그녀는 결국 열어버렸다.


판도라를 탓할 것인가?   

아마도 판도라가 아닌 누구라도 그 상자를 열었을 것이다.

신의 노림수가 아니었던가.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

슬픔과 증오, 시기와 질투, 가난과 전쟁 등 온갖 감당하기 어려운 악한 것들이 상자 속에서 세상밖으로 한순간에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으나, 이미 모든 악한 것들은 세상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오로지 희망만이 상자 안에 남았다.     


이것이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온갖 고통이 나를 쉽게 찾아오는 이유이다.

마음껏 날아가버린 그것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쉽게 내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애써 찾아 나서야만 희망을 만날 수 있는 이유는,

희망은 미처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그 상자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제 스스로 돌아다니며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직도 상자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 안에 아직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이 닥쳐와도 희망을 간직하며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희망은 상자 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상자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내가 능동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도망가지 않고 상자 안에 남아있기 때문에, 

내가 찾고자 노력한다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오히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탈출한 온갖 어려움의 조건들은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나를 찾아 오지만,

희망은 내가 찾아 나서야만 하는 것이다.    

 

상자 속에 온전히 남아있는 멋진 희망을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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