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속에 담긴 존중의 의미
최근 한 취업포털회사의 설문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 평균 하루에 커피 2잔 이상을 마시고 있으며, 커피 값으로 월 12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커피는 이미 개개인의 생활 영역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하나의 지표일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에 있어서는 뜨거운 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나 주변을 둘러보면 계절과 상관없이 빠르게 마실 수 있고 캐주얼한 느낌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해서 요즘에는 나도 종종 커피에 얼음을 넣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시원하고 쌉쌀하니 확실히 뜨거운 커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사실 더위와 피로로 인해 지쳐있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현대인들이라면 한 번씩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던 어느 날 문득 예전에 보았던 한 영상이 오버랩되었다.
영상은 현지 이탈리아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의 맛에 대한 비교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자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 찌꺼기에 우린 물 같다며 그들에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이런 것을 마시는 것은 이탈리아인의 수치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커피와 커피 문화를 망쳐놓았다고 힐난했다. 이후 촬영자가 제시한 에스프레소를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이것이 제대로 된 커피’라며 안도하는 그의 표정에 나 또한 에스프레소를 마셔봐야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편 의아한 생각이 불쑥 솟았다.
에스프레소의 풍미에 미소 짓는 이탈리아인을 보며 과거 예맨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는 커피가 아니라고, 커피 열매가 통째로 들어 있는 검붉은 음료를 마시며 '이것이 제대로 된 커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오스만 인들은 열매를 함께 넣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고, 커피 즙이 발효된 시큼한 음료를 마시며 ‘이것이 제대로 된 커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과거 에티오피아인들은 깜짝 놀라며 발효액은 커피가 아니라고, 걸쭉한 커피 죽을 마시며 ‘이것이 제대로 된 커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커피란 무엇일까? 아마 그런 것은 실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세계 전역으로 퍼진 커피는 그 시대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변이가 일어났으며 시간적으로 나름대로의 보편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저것은 ‘틀린 것’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홍차에 우유를 타건, 피자 도우 위에 소시지를 올리건 선택된 맥락이 있을 것이며 대중화된 다양한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맥락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언젠가 서구에서 아이스 청국장이 나오더라도 한국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것 따위는 없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것을 즐길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