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가 거기인가요?
서울만큼 많은 공감각적 콘텐츠를 함유하고 있는 공간은 드물다. 의지와 의향만 있다면 이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무한정 경험할 수 있어서, 오히려 한 개인이 전부 수용하기 벅찰 정도이다. 일반적인 도시에서 소위 ‘다운타운’이라고부를 수 있는 도심의 기능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도 서울 안에는 여러 곳이 존재하다. 중요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이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 정도에 비견될 수 있는 도심의 기능적 구성을 테헤란로와 양재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대학로와 홍대, 성수동과 같이 특정 예술집단의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혀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공간도 서울 안에 여럿 존재한다. 신촌은 전통적으로 대학문화와 유흥문화의 대명사 격의 공간이었다가 최근 침체되었다. 그렇다고 서대문구나 마포구에 위치한 사람들이 주거 지역 근처에서 놀만한 공간을 잃었다고 낙담하거나 절망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홍대는 물론 상수, 합정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콘텐츠의 홍수에 가까운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정보와 경험거리에 노출되어 있고, 그래서 시간을 훨씬 풍성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공허함과 지루함을 느끼는 공간이 또 서울인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적 특색이 확연히 두드러져서 ‘이곳에 가야만 무엇무엇을 즐길 수 있다’라는 것이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은 공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홍대와 대학로도 십여 년 전부터 대학 문화와 예술의 대중적인 공유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가더니, 이제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점포들로 가득한 평범한 서울의 거대 상권으로 전락해 버렸다.
소위 자본의 논리로, ‘잘 나가는’ 거리의 상권을 최초의 만들었던 장본인들이 건물주들의 무리한 임대비 요구를 못 이겨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게 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심심치 않게 이와 관련된 기사를 흔하게 접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개성이 강한 다양한 상점들이 이루는 거리의 독특한 문화보다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만들어 놓은 똑같은 인상의 똑같은 콘텐츠를 동시에 제공하는 똑같은 상권을 가까운 곳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할 뿐이다.
우리의 제한된 시간을 보다 풍성하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우리모두 다같이 서울을 떠나자’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실적으로 서울을 떠나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 지형도는 훨씬 척박해서 풍요로운 문화 환경에 대한 갈증감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당장으로서는, 그리고 이러한 글을 통해서는 점점 재미없어지는 서울의모습을 바라보며 한탄조의 이야기만을 늘어놓을 뿐이다. 도심의 반복적인 이미지와 콘텐츠의 향연은 전혀우리 뇌의 유기적인 활동과 풍성한 감수성을 자극하지 못하고 언제나 지루하고 단조로울 뿐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러한 지루함 때문에 언제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유흥문화만을 더 간구하게 되며, 그것만이 서울에서 가장 유별나게 잘 발달하고 있는 형태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울의 외형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건축물들, 거리들, 상점들을 살펴보자. 어떤 때 높은 곳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실제로 걸리지는 않았지만) 녹내장에 걸린 상태에서 관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정도로 회색 빛깔의 아파트와 특색 없는 건물들로 시야가 뿌옇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면에 이러한 건물들 사이사이로 위치하고 있는 술집이나 점포들은 밤이 되면 어김없이 원색적인 네온사인 간판들이 불을 밝힌다. 극단적인 색깔의 대조가 반나절의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곳이 서울이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시각 정보들이 우리의 시간을 알게 모르게 소모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공간 속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출근할 때 거치는 길거리와 퇴근 길에 들르게 되는 유흥거리 모두가 우리의 특색 없는 삶의 형태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단단하게 굳어 버린 우리의 삶의 일상이 하나의 잘 닦여진 통로처럼 되어서, 우리의 시간을 아주 빠르게 저 멀리 과거로 계속해서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