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눈을 다친 적이 있었다. 이후 1년마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대학 병원엘 가는데, 고작 한해 한 번 대수롭지 않은 이 행보를 나는 무척이나 싫어했다. 병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안 그러던 사람이,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 치과 가는 것처럼 부담을 가졌으니 조금 유별난 경우이기도 했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불가하다는 점, 때마다 편차가 커서 가늠하기 어려운 대기 시간, 입구에서부터 코 끝을 진하게 밀고 들어오는 시큼한 약품 냄새 같은 것들의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것은 사람들의 삭막한 표정. 몸의 병이 마음에까지 전이돼서 한참을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 같은 그 표정을 마주치게 되면 안타까운 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께름직한 감정이 들어 당장이라도 자리를 떠나고만 싶었다. 체한 것마냥 가슴께가 영 뻐근해지는 것이 부담과 불편과 불안 따위가 이 안에서 죄다 섞이고 있는 느낌. 그래서 차례를 기다릴 때면 주의를 돌리고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곤 했더랬다. 그리고 어느 하루,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최대한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으려 미리 준비했던 책을 꺼내 한참을 읽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접수 데스크 쪽에서 조금씩 목소리가 커지더니 중년 사내의 강짜 부리는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읽고 있던 문장들은 이미 데스크의 대화로 방해를 받기 시작했고, 그 소란이 짧지 않을 것 같아 잡고 있던 책을 덮어버렸다. 남자는 이곳저곳이 아프다는 말로 일관했고, 간호사들은 검사 결과엔 이상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환자분 이쪽 검사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요. 그래서 담당 선생님도 신경정신과 진료 한 번 받아보시라고 말씀드렸고, 저희가 그쪽 예약을 잡아드리려는 거예요."
사내는 한사코 이를 부정하며 자신이 '신경정신과'에서 진료를 볼 이유가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아마도 '정신과'라는 단어가 영 불편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 얼마간의 소동이 잠잠해지고 환자는 결국 또, 같은 과에 억지 예약을 잡고 떠나갔다. 괜한 호기심이 들어 내 이름이 호명되고 차례가 되었을 때 넌지시 아까의 일을 데스크에 물어보았다. 병원을 다녔던 몇 년 간 기계적인 답변만을 보였던 간호사는, 처음으로 표정을 보여주고 눈을 마주치며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마음이 아픈 분이세요. 그래서 저희 쪽에선 늘 문제가 없다고 결과가 나오는데 매번 저렇게 우기곤 하세요."
섣부른 이해일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그 대답에 안타까운 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을 담아 전달했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픈 사내라고 한다.
마음이 아픈 사내는, 그 어떤 사달에 자신의 마음이 다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차라리 몸이 아픈 것이 마음에 금이 간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 거라는 외면이었을까. '마음이 아픈 분'이라는 그 말이 오래도록 발에 채여 자꾸만 그날의 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몸이 아플 땐 가야 할 병원이 분명한데, 마음이 다치면 어디로 향해야 할지부터가 깜깜해진다. 혼자가 나을지-함께가 나을지, 머무는 것이 좋을지-떠나는 것이 좋을지, 보통날로 보낼지-일탈로 보낼지. 약이라고는 고작 시간뿐이라는데, 오롯이 흉터를 마주하는 것 말고는 방안이 없어 더욱 버거워지고 만다. 차라리 세차게 앓고 말면 좋으련만, 마음의 병은 일상의 틈 사이를 주기적으로 비집고 들어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을 엎질러 버린다.
시간이 아주 오래 흐른 뒤라면, 내과, 치과, 안과처럼 마음의 병원도 만들어질 수 있을지. 조물주가 있다면 어쩌면 일부러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테니
마음이 아픈 중년의 사내와 간호사들처럼 혹은 그들과 나처럼.
[사진 : 이스탄불, 터키 / 런던, 잉글랜드 / 이스탄불, 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