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고있는땅콩 Jan 21. 2021

술을 마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첫 잔은

 스무 살, 처음 입에 담았던 소주는 그야말로 달달했다. 당연히 입에선 쓴 맛이 감돌았지만, 알딸따알해지는 것이 새내기라는 대학의 설렘과 어우러져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한 번에 털어내는 동작도 좋았고, 취하는 느낌도 좋았고, 자리와 사람의 열기 또한 더할 나위 없었다. 소주 한 잔에 대학 생활이라는 안주가 곁들여지는 조합을 어디에 견줄 수 있을까. 어른들의 세상은 이리도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찬 것이라고 삶을 오해하기도 했었다. 선배들이 부르는 술자리나 학과 행사 같은 것이 있는 날이면 괜히 가기 싫은 척 동기들과 앓는 소리를 해댔지만, 내심 기대에 차서 마음이 설레고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었다. 모든 일상이 봄꽃으로 수놓은 풍경마냥 몽글몽글하게 느껴졌던 때였다. 그런 낭만적 환영幻影의 원인이 술인지, 사람인지, 그저 새싹 같은 나이 때문인지 당시엔 밝혀낼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리워질 거라는 사실만큼은 그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쓸쓸해지는 날엔 또 한 잔 기울이기도 했었지.

 후배를 몇 번쯤 새로 맞이하고 나니 소주는 더 이상 달지만은 않았다. 느껴지는 맛 그대로 쓰리게 목구멍을 넘어갔고, 이따금 숙취로 무너진 하루에 다시는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허튼 다짐을 되뇌기도 했었다. 피하고 싶은 술자리들이 생겼고, 좋아하는 술과 꺼리는 술이 명확해졌다. 하물며 소주도 특정 브랜드의 것만을 선호했을 만큼 취향이 굳어지고 있었다. 술이 단 날은 인생이 쓰고 고됐던 것이고, 술이 쓴 날은 인생이 그만큼 달았던 것이라 말하는 고학번 선배의 말이 진짜인가 싶어, 하루가 힘들거나 즐거웠던 날에 실험을 해본 적도 많았다. 물론 술은 그냥 늘 쓴 맛이었다. 조금 더 맹맹하게 잘 들어가는 날이 있었을 뿐. 그런 시도의 끝에, 술맛을 결정짓는 건 도리어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술자리를 빌어 사람을 마시고 토하는 걸 배웠다고 해야 할까.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곤조도 좀 생겼던 것 같고.



 학교에 선배가 거의 남지 않았을 즈음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소주의 쓰고 덜 쓰고는, 그러니까 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 맛의 차이는 제조 공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소주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물인데, 각 공장에서 끌어 쓰는 지역 물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 수년간 '달달한 소주'의 비밀을 연구해 온 우리에게, 주류 회사에 입사한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숨겨졌던 진실을 알리고 술자리를 떠났었다.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의 숫자로 제조 공장을 확인하면 이 소주의 쓴 정도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걸 툭하니 알려주고 휙. 그날 이후 더 이상 하루의 고된 정도를 소주 맛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지식이 많아진다고 세상이 더 흥미로워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날.

 요즘은, 그냥 마시는 것 같다. 오랜 습관이니까 이래서 그냥, 저래서 그냥,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이유나 명분을 애써 찾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외로워졌다. 술의 맛에는 더 이상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예전만한 애정도 없어졌다. 구태여 소주만을 고집하지도 않고, 특정 브랜드를 찾지도 않으며, 술 약속이나 술자리에 마음이 동動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나이가 들며 둥글어진 것인지, 지녔던 순수가 가파르게 깎여나간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 술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함께 앉아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위안을 삼는다. 어쩌면 삶에 월권을 하던 술이 다시 제 역할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술기운이 오른 귀갓길에선 돌이킬 추억이 많아졌고 그리운 사람도 생겨버렸다. 독주가 음주 당일이 아닌 이전 기억까지 지워준다면 몇 번쯤은 만취하고자 노력도 했으리라.



 술을 마시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숙취로 허덕이던 아침이었는데, 술로 인연이 튼 사람과 술로 인해 끊어져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되려 술을 들이켰던 다음날이었지 아마. 소주잔을 처음 건네고 따르며 조심스레 술을 넘기듯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한철 그 사람에 취하게 되는 일. 익숙해졌다는 방심으로 양이 넘치게 마음을 따르다 와장창 기억을 토막내고는 당신에 관한 여러 가지를 간과해버린 밤. 흐릿한 새벽을 관통한 뒤의 숙취는 미련이나 후회였다 말할 수 있을까. 술렁였던 만큼 딱, 통증은 비례했다. 그래서, 다시는 이렇게 먹지 않겠다고 되뇌이는 휘발성 다짐. 어차피 또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을, 넘치는 것이 부족한 것보다는 낫다는 믿음은 바꿀 생각이 없으면서 말이야.


처음의 추억은 없더라도 첫 잔의 추억은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사진 : 소호 거리, 홍콩 /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 런던, 잉글랜드]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로 태어날 걸 그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