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고있는땅콩 Jan 25. 2021

그 모습이 나를 닮아서

 잠들기 전 휴대폰의 설정을 벨소리로 바꿔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깊은 밤 누군가 혼자 허우적대며 여럿에게 연락을 취할 때, 나에게까지 이르는 일이 있을까봐서요. 나마저도 그 연락을 놓치거나 외면하면 이미 깔린 어둠에 슬픔을 더 보태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는 까닭입니다.

 초저녁 무렵 휴대폰에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습니다. 조금 뒤 한 번 더 연락이 왔었는데 그마저도 제 때 받질 못했더랬죠. 좀 피곤했던 하루여서 다시 거는 예의는 모른 척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지른 마음과는 달리 습관을 또 습관처럼 두르고 말이에요. 밤 어디쯤이었으려나요. 결국 벨소리는 또 한 번 울리고 말았습니다. 취기 어린 목소리, 전화를 받아주어 고맙다는 말부터 서둘러 건네는 그 절박함에 이전 두 번의 부재가 많이 미안했습니다. 세 번의 전화를 거는 사이 마음엔 얼마나 큰 진폭이 일렁였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을 찾아 헤맸을까요. 그이는 마음이 퍽퍽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내일이 되면 또 아무 일도 없이 출근을 하겠지만, 당장 오늘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끝내 그이의 얼굴을 마주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한낮이 아니라 깊은 밤이었으니까요. 어쭙잖은 조언이나 술을 더하기 위함은 아니었어요. 그저 삶이 외롭고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이렇게 마주 앉아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구 하나쯤이 있으니, 오늘도 내일도 퍽 괜찮지 않냐는 마음을 슬몃 비추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 묻더군요. 남 일에 너무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냐고. 아니요, 그 벨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내가 거는 전화 같아서, 그이의 목소리와 얼굴에 내가 보여서 그랬던 것일 뿐이에요.


삶과 사람이란 단어가 썩 닮은 것이 한 배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린, 삶이 잘 안 될 때에 본능적으로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는지.





[사진 : 제주, 대한민국]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혹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