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 진실
무작정 예뻐지겠다고 결심했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분명 그때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소개팅남에게 강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나는 분명 괜찮은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감히 너 따위가 날 외모로 판단해?" 라고 생각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부족한 것은 외모일 뿐이고, 이것만 온전하게 채워질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환영받을 만한 좋은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뻐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어쩌면 나는 예쁘지 않아도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기를 바랐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나에게도 예쁘다고, 너 참 예쁘다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도. 예쁘다 혹은 안 예쁘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그동안 살아오며 겪었던 불편하고 속상한 일들이 악몽과도 같이 연거푸 떠올라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기가 찰 정도로 기분 나쁜 말을 들었던 일, 알고 지내던 남자 선배들에게 장난 삼아 놀림받았던 일,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들.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때 그 순간의 불편한 마음이 되살아 나면서 만약 내가 지금보다 더 예쁜 나일수만 있다면 똑같은 일을 겪었을까, 내가 외모가 별로라서 사람들에게 그런 기분 나쁜 일을 당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굳이 남녀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더라도 '나'란 존재가 무시당했던 순간 속에서 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면 그것은 역시 '외모'겠지.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을 또다시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테니 지금이라도 '외모'를 더 가꾸어두면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아니 오히려 내가 받았던 일들을 그대로 되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복수심마저 품고 있었다.
전지적 1인칭 과몰입 시점. 내 삶 속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간 일들을 오로지 나만의 생각과 관점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며 나의 생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왜곡된 시선. 그것이 나를 슬픔과 비참함의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왜곡된 확증편항에 사로잡힌 나는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고 나를 이해 못하는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싶어 했던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너무도 분명했던 이 사실을 어떻게서든 마주하고 이겨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