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 기억
몇 해 전 고전소설 <박씨전>을 수업할 때였다. 박씨 부인이 못생겼다고 얼굴도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남편 이시백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러다가 서로 얼굴을 헐뜯는 말장난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손가락질 해가며 너가 이상하네, 못생겼네 놀리다가 갑자기 내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장난기 넘치는 아이들은 '선생님 이상해요. 안 예뻐요.' 난리를 치며 떠들어댔지만, 한 아이가 사뭇 진지하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예쁜 것도 아니지만,
못생긴 것도 아니에요.
이 녀석이 의외로 마음 쓸 줄 아네. 내가 상처 받을까 봐서 안 예쁘다는 말을 저런 식으로 에둘러서 하나보다 했다.
예쁘다는 게 무엇인지 몸부림치며 고민하던 중 이 말이 종종 생각나곤했다. 그때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두고 예쁜 것도 못생긴 것도 아닌 평균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예뻐지겠다는 생각에 온 정신이 팔려있을 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예쁜 사람과 안 예쁜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관상을 하나 둘씩 뚫어져라 쳐다보며 누가 예쁘고, 안 예쁜지 살피고 또 살폈다. 요즘에는 어딜가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눈밖에 볼 수가 없지만 식당이나 커피숍 같은 마스크를 벗고 있는 곳에선 주저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티 안나게 슬쩍슬쩍 엿보곤 했다.
그렇게 몇 달 얼굴 관찰을 하면서 사람을 '예쁘다, 안 예쁘다'로 딱 잘라 말하기가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론의 여지없이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그저 평범하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는 '예쁘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안 예쁘다'고도 할 수 없는 얼굴들이 훨씬 많았다. 안 예쁘다고 단정짓기에는 얼굴과 몸 곳곳에 괜찮은 구석들이 한두 군데쯤은 다들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것도 아니지만 못생기지도 않았다'는 그 녀석의 말도 나와 같은 색깔의 고민이었을까? 아이는 나와 함께하는 수업을 좋아했다. 심술궂게 대할 때도, 말을 안 들을 때도 있었지만 심적으로 나를 의지하고 잘 따랐다. 그 아이에게는 어쩌면 내가 예쁘고 안 예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예쁨'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을까? 솔직히 외모가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눈이 달린 사람이면 아름다운 것에 호감을 갖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눈'만 달린 게 아니다. '예쁘고 잘생김'만으로 관계를 유지해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눈'에 보이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게 부각되어 겉모습과는 별개로 호감이 더 올라가기도 떨어지기도 한다.
혹시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나를 판단하고 거절했다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눈'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을 피할 수 있지 않았는가. 물론 그 사람이 나를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 다른 면을 보고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도 않지만 사람좋은 사람을 찾는 사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말고도 사람의 사람다움을 보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