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 집착
선생님, 못생겼어요.
수업 중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말했다. 어려서 잘 모르고 하는 버릇없는 말로 넘겨버리면 그만인 일이지만 그날따라 무척이나 아팠다. 어린아이 앞에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걸 간신히 삼키며 말했다.
예쁘지 못해서 미안.
못생겼다는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하는지 머리가 새하얘져서 사과를 해 버렸다. 자발적으로 못생긴 죄인이 되고 말았다. 그날 퇴근하는 길,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다음 주
장난 삼아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친구들한테 예쁜 선생님 있으니까 많이들 오라고 좀 해 봐."
새나라의 어린이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안 예쁜데."
오기가 생겨서 "나 예쁘거든."하고 말을 되받아쳤다. 그러자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다른 선생님한테 달려가서 하소연을 하는 게 아닌가.
저 선생님이 예뻐요?
대놓고 안 예쁘다고 따지는 것보다 더 기분이 상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말하는데, 저렇게까지 할 정도로 내가 안 예쁜 건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다.
나라는 사람은 왜 그렇게 예쁘다는 말에 집착하는 걸까. 안 예쁘다는 말에 제발 저린 도둑처럼 안절부절못하고는.. 스스로가 어떤 모습인지 서글플 정도로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건가. 아이들의 말 따위야 가볍게 넘겨버리면 될 것을 거기에 상처 받고 슬퍼하는 건 또 뭔지.
괜히 자신을 사랑한답시고 그럼에도 나는 예쁘고 소중하다며 의미 없는 말로 꽁꽁 감쌀 생각은 추오도 없다. 허나 안 예뻐도 그만이라고 늘 마음에 새겨두고는 있지만 매번 이렇게 흔들리는 꼴이라니.
친구들은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영영 이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누군가를 의지해서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나약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훗날 누군가를 어떻게 만나든지 지금 이 문제는 내 노력과 힘으로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다.
예쁘려고 태어난 건 아니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거지. 어쩌다 보니 여자의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 좌절감을 맛보고 있지만, 생김새가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전부는 아니니까. 그렇게 믿고 또 믿어야 한다.
그럼에도 떨쳐내려고 하면 더 그 떨쳐내려는 것에 또 집착하고 마는 모순과도 같은 이 상황.
산다는 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다가 죽는 거 아닌가. 이렇게 고민하고 아파하다가도 어느 날은 괜찮다가 또 어떤 날은 죽을 만치 괴롭기도 하다. 훗날 예쁘다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나이에 들어서면 조금은 자유로워질까?
오늘의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몸의 일부가 되어 함께 안고 갈 수밖에. 눈물이 흐르는 날에는 울고, 분노가 치미는 날에는 세상 떠나가라 욕도 날려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넘겨가며 예쁨에 집착하는 치졸한 나 자신과 조금 더 친해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