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너희들을 품으며
문학은 인간의 정서를 대변한다. 문학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질 수 있지만 읽는 동안 섬뜩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독자는 가공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상황을 마주하며 눈물과 한숨, 그리고 기쁨과 위로를 경험한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문학이 가지는 본질이자 기능인 것이다.
청소년 문학도 의미면에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청소년’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이상 문학 속을 누비는 주인공은 10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이고, 다른 연령대보다도 청소년 독자에게 더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장르라고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영어덜트 문학이라는 장르도 등장하고 있는데 청소년은 물론이고 22~25세성인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읽은 책으로 연일 화제가 되었던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청소년 성인 할 거 없이 폭넓은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영어덜트 소설이다. 물론 영어덜트 문학의 독자층을 딱 25세로 잘라낼 것까지는 없다. 그 보다는 청소년 소설에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함께 즐기기를 원하는 성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 때 연령대 별로 문학의 장르를 세분화 하는 것이 굳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더군다나 청소년 도서베스트 셀러에는 청소년 도서가 아닌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들도 상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서 성인 도서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책은 어른인 내가 볼 때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재밌다며 크게 반응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그 이후 각 세대의 마음을 더욱 깊고 섬세하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저마다 다른 색깔의 이야기 장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318 청소년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문학 출판물이 간행되기 시작한 게 2000년 전후반의 일이다. 그로부터 20년 남짓 흐른지금 청소년 도서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도 생겨나고 '완득이' '시간을 파는 상점' 등 청소년에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스테디 셀러도 정착하고 있으니 청소년들이 읽는 문학의 색깔이 점차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청소년 문학의 미래는 앞선 업적과는 달리 생각보다 비관적이다.
1970년에 태어난 출생자 수는 약 100만 명이 넘었다. 올해 중2병을 앓고 있을 2006년도 출생 아동의 수는 45만 명, 1970년에 비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수이다. 작년 출생 아동수는 30만 명 남짓, 사태는 점차 심각해진다. 이러다가 매년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20만 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출판도 결국 시장의 생리를 벗어날 수 없다. 미래에 청소년이 될 인구가 이렇게 줄어들고 있으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출판물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는 건 아닐까 노파심이 든다.
게다가 2020년 이후부터 입시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입시 제도를 둘러싸고 몇 차례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정량화된 시험이 모두에게 공정하다는 국민의 정서를 반영된 것인지 대입에서도 자소서 및 논술, 독서와 같은 비교과 활동 영역도 모두 폐지 되고 수능으로 대학을 가야하는 정시비중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청소년들의 우선순위는 독서보다 교과목 공부에 치우치고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더 문제는 청소년들에게는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재미있는 유튜브 동영상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게임도 할 수 있게 해 준다. 바쁘고 분주한 공부 일상에 여유가 생긴다 할지라도 아이들의 손에는 책이 아닌 스마트폰이 쥐어질 게 뻔하다. 그것들과 경쟁하기에는 '책'은 너무 정적이고 재미없으며 쓸 데 없이 무거운 벽돌 같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곱씹어 보면 청소년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지 싶다. 그러나 아동 문학이 있고, 성인 문학이 존재하는 한 청소년 대상의 문학 작품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가 청소년 시기였을 때는 '청소년' 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문학 장르 자체가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저 동화를 떼면 그 다음 읽을 것은 교과서에 나온 유명한 작가들이 썼다 하는 명작들이었다. <주홍글씨> <태평천하> <데미안> 사실 당시 그것을 읽었을 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음미하기 보다는 읽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는 독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읽고 싶어서 한 독서가 아니니 이내 책 읽기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수능 준비에 정신 없어 책을 손에 잡은 것 자체가 손에 꼽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른이 되고 말았다.
어른이 되고나서 소위 성인 문학이라는 것을 접하며 느낀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나치게 거친 표현도 자주 등장하고 성적 묘사도 자극적이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다가 민망해서 책을 덮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읽다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성인 문학은 경계가 없다보니 작가가 무얼 전달하겠다고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 공감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다. 좋은 문학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인 문학을 접하고 느낀 불편함이 적지 않아 문학과 멀어지게 되었다. 책 읽을 시간도 참 많았는데 그때 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같은 경제, 경영 실용서만 내리 읽어댔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읽기는 했는데 남는 게 없는 알맹이 빠진 책 읽기가 되고 말았다.
문학의 재미에 다시금 빠져들었던 것은 대학 졸업 후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독서 수업을 통해서였다. 5,6학년 중학교 1,2 학년을 대상으로 한 주에 한 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보다도 내가 더 신나게 책을 읽었다. 청소년 시절 교과 공부로 한참이나 뒷걸음친 내 문학적 감수성이 이제서야 뽀얀 솜털이 되어 몽글몽글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문학을 향한 감수성이 월반을 하지 못한 채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던 것이다. 그때 부터 청소년 소설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어갔다. 공부로만 얼룩져있는 나의 10대를 회상하고 달래며 청소년 문학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 문학 시장이 가진 암울함과 필요성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입시 현황, 출산율 저하, 멀티미디어 매체의 확산은 청소년들이 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악재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그 시대의 문제와 어려움을 또 당대의 십대가 가진 시각으로 바라보고 위로하며 보듬어가기 위해서는 청소년 문학은 계속해서 쓰여지고 또 쓰여져야만 한다.
그리고 나처럼 문학적 감수성이 십대에서 멈추어 있어 청소년 문학을 사랑하는 성인 독자들도 앞으로 점차 늘어갈 것이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관계 문제, 사회 문제, 젠더 문제 등 다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주인공 청소년을 둘러싼 성인들의 모습을 비추면서 서로가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청소년 소설이 청소년에게만 읽혀서는 안 되는 이유기도 하다. 청소년 소설을 읽고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문학이 공감을, 공감이 화해를 이끄는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 어른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청소년의 마음을 꿰뚫어 그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청소년 작가들도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나이는 한참 먹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감수성은 청소년에 머물러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그 어느 시기보다도 아프면서 아픈 줄도 모르는 청소년, 너희들을 마음껏 품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