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희 <어느 날 난민, 2015>
1. 어느 날, 어쩌다가
부모님이 심하게 다툰 일이 있었어. 당시 내 나이 열여섯, 어린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화가 들끓는 집에 있는 것은 너무도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지. 난생처음으로 집을 나왔어. 다행히도 반 친구와 그 친구의 부모님은 나를 안타깝게 여겨 며칠간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었어. 그렇게 일주일을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학교를 다녔어.
그러나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사는 건 역시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야. 하지만 집에 있으며 불안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어. 나는 그리 눈치 없는 아이가 아니었거든. 신세를 지고 있다는 미안함과 그들 가운데서 묘하게 배어 나오는 어색함을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 부모님의 화가 얼추 정리되었을 것이라 굳게 믿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어. 물론, 너무 일찍 돌아와 버린 것은 아닌가 후회도 좀 했고.
'어느 날'의 순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찾아와. 비뚤어질 생각이 전혀 없던 내가 마음 졸이며 친구 집에 전전하게 될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난민'들의 처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느 누가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낯선 나라에 살고 싶겠어. '어느 날' 갑자기 난민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기가 막힌 그들의 처지를 두고 가장 저주하고 싶은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닐까?
2. <어느 날 난민>의 이야기는
가족에게 살해될 뻔하여 도망쳐 나온 인도 여성 찬드라,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한국어는 잘하지만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해나와 강민 그리고 뚜앙,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감시와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 넘어온 모샤르와 옥란, 반기문을 보고 한국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는 프랑스 아프리카 연인 미셸과 웅가. 이들 모두 목숨을 걸고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한국으로 넘어왔어.
하지만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한들 모두가 '난민'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자신이 이 나라에 왜 머물러야만 하는지 증명해야만 했거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도착했는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더 안쓰러운 일은 아무리 증명을 해 보인다고 해도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야. 한두 달, 길게는 몇 년을 기다려야만 하거든.
<어느 날 난민>은 난민 센터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하는 난민과 그들을 돕기 위해 난민들의 사연만큼이나 독특한 사연을 가진 한국인이 연대하며 울고 웃는 이야기를 펼쳐놓은 책이야. 굵직한 서사가 있다기보다는 웬만해서는 알 수 없는 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이야기를 자세하게 그리고 따뜻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어.
3. 알고도 넘어오는 이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난민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을 매년 3만 명을 웃돈다고 해. 이 중에서 실제로 난민 자격을 부여받는 이들은 몇 백 명 남짓. 백 명에 한 명꼴로 인정받을까 말까 한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란 말이지. 난민들도 자국을 벗어나는 순간 오도 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은 알고 있을 거야. 그걸 알면서도 넘어오기를 감행하고 있다는 건 지구 상에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열악한 나라가 아직도 실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내 주변에서만 별일 없으면 그저 평화롭고 행복한 지구촌이라 오해하기 쉬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종교의 멍에를 씌워 무참히 사람을 짓밟고 죽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
난민들이 난민으로서 살아가게 된 것에 그들의 잘못은 없어. 오히려 '용기'가 있는 것인지도. 전쟁과 폭력에 그대로 순응하며 자신의 삶을 수동적으로 맡겨두기보다는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어 '이 땅'에 도착한 것일 테니까. 그래서 그들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든 그렇지 않든 우선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는 동안이라도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4. 소설이 다 보여주지 않은 것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더 이상 갈 곳 없는 난민에게 가혹하리만큼 닫혀있는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특히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센터 안에서 자살을 한 뚜앙의 이야기는 그 마음의 절정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주곤 하지.
난민이 난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처지지가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우리나라 또한 그 책임을 가질 만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야. 무작정 난민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주게 되면 오히려 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의 삶이 위협받을지도 모르니까.
난민 센터가 세워진 지역의 사람들의 고민 또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 소설 속에서는 센터 앞에서 '국가 세금 낭비, 테러리스트 위협'과 같은 구호를 내걸고 반대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듯 묘사되고는 있지만 그들의 왜 그렇게까지 시위를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속 깊은 사연까지는 자세히 드러나지 않아.
난민의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연대하여 단계적이고 복합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복잡한 문제야.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국적을 불문하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난민이 처한 현실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그 노력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 소설을 통해 작가가 독자가 될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