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의 싸움을 해야만 한다

오문세 <싸우는 소년, 2015>

by Skyblue

1. 제일 무책임한 말



어릴 때 어쩌다가 싸우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야."

"그냥 눈 딱 감고 화해해."


아이들의 분노는 어른들에게 이렇듯 무시되곤 했다. 어른들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강요하는 것은 무슨 상황인가. 아이들의 싸움은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화해하고, 져도 이긴 것처럼 정신 승리로 끝낼 수 있을만한 것인가?


싸움의 잘잘못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그저 져도 이긴 척 눈 딱 감고 화해하는 무책임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싸우는 일에 등한시하고 싸우게 되더라도 물러서게 만드는 싸움에 물러 터진 아이들이 생겨났다. 싸움은 나쁜 것이고, 싸우면 참아야 하고,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어떻게 버티면 어른들이 화해로 풀어줄 것이라는 환상은 기어이 학교폭력이라는 무덤 아래 이 아이들을 묻어버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2. 싸우기로 결심한 소년


이야기는 차에 치여 입원한 소년이 의식이 돌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심하게 따돌림을 받았던 자신의 친구서찬희가 괴롭힘 끝에 발생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사건, 의식이 돌아오면서부터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소년을 괴롭혔다. 자신의 친구를 괴롭혔던 무리들, 그중에서도 운동부 출신 안승범은 도대체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입원이 길었던 터라 소년은 같이 입원해 있는 사람들과 친분이 쌓이면서 여러 사연을 알게 된다. 각자 갖가지 사연들로 싸우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의 서려있는 분노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무엇보다 친하게 지냈던 산이 누나를 통해 권투의 세계를 알게 되고, 퇴원을 하자마자 산이 누나가 있는 체육관에서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다. 안승범에게 복수를 해 줄 그 날 하루를 위해.

복수를 다짐하고 다시 학교에 가게 된 날부터 소년은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곳에서 누가 누구를 괴롭히고 힘들어하는지, 또 그 괴롭힘에 맞서거나 당하는 이들의 장면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찬희를 죽게 만든 무관심한 반 친구들, 무능력한 선생님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관장은 싸움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에 있다며,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데 이때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는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태권도로 단련된 안승범을 때려눕힐 정도의 실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저 단번으로 끝낼 싸움이라면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려 때려눕히면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된 소년. 옥상에서 시시덕 거리는 안승범을 향해 말로 도발을 하며 한껏 주먹을 날려보는데...


3.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분노


이 소설에 반전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소년의 정체다. 소년은 이야기의 후반부가 될 때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서찬희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안승범 무리들이 어떻게 찬희를 괴롭혔는지 장면들이 소년의 회상으로 반복되면서 주인공 소년은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인공 소년은 당시 서찬희가 죽었을 때 안승범의 패거리에 껴서 그저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였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그 아이와 대화를 하며 욕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와서 그저 안승범 패거리라고만 넘겼다가 후반부에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소년의 이름은 강준혁, 친구 서찬희가 안승범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안승범이 무서워서 차마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 결국 서찬희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말자, 자신이 얼마나 치사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면서 그때 하지 못했던 찬희 몫의 복수를 준비했던 것이다.


4. 싸움을 가르쳐야 한다.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 하지만 살아가면서 너무도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싸우는 일이다. 가족의 품을 벗어나는 순간 어디를 가든 전쟁터가 된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만인을 향한 전쟁을 불사하는 존재, 그 속에서 자신이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의 자유를 짓밟으려는 힘에 맞서고 싸워야 한다. 스스로가 싸울 줄 알아야 한다. 연대는 싸울 줄 아는 개인이 있고 난 다음의 일이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며, 아이들의 싸움을 입맛에 따라 판정 지으려 했던 어른들의 오만함을 거절한다. 한 번 지면 계속 지는 거고, 그 인생은 어디서든 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또한 화해는 결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싸움이 만들어진 그 책임을 명확하게 물어야 하고, 그 책임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며 화해는 그 처벌 이후에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평화'만이 중요하고 평화롭게 서로가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것처럼 가르친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평화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은 힘을 가진 자들 뿐이다. 힘 없이 짓밟히고 눌려있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권리가 돌아올 때까지 싸우는 일을 멈추어선 안 된다.


싸움을 가르쳐야 한다. 반드시 우리 아이들은 싸울 줄 아는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서든 불의에 타협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싸울 줄 아는 용기와 힘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한다.


괴롭히는 자들과 싸울 줄 몰랐던 서찬희, 그리고 불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의 죽음에 맞서 싸우지 못했던 주인공 소년 강준혁에서부터 학교 폭력의 문제가 가진 본질적인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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