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누구나 해 본 그 생각

유영민 <오즈의 의류수거함, 2014>

by Skyblue

1. 누구나 한 번쯤은 파스타가 먹고 싶다


http://m.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569100012



얼마 전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청소년끼리만 알고 있는 자살 암호가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어.


"나 오늘 파스타 먹었어."


오죽 어른들과 소통이 안 되었으면 자기들만의 암호로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암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하고 무거운 심정에 억눌린 청소년들이 SNS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해.


몸과 마음이 폭풍과도 같이 변하는 청소년 시기. 자신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가득 차 있는데,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경쟁으로 내몰리니 말이야. 의욕을 잃고, 더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충분히 든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재미없고 지루한 일이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현재를 무조건 참게만 만들고 있으니까.


나도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삶의 시간 중에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던 때를 꼽으라면 청소년 시기를 떠올리게 돼. 파스타를 먹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아마 그 시기를 살아갈 때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어.


2. 의류수거함에 버려진 인생


도로시는 청소년에게 무척이나 재미없는 이 땅,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고등학생이야. 중학교 3년,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진학을 꿈꾸며 자기 딴에는 열심히 노력했다 싶었는데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지. 여차여차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고는 있지만 늘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어.


그래, 이민을 가는 거야!


엉뚱할 수도 있지만 도로시는 대한민국 땅을 떠나 호주로 이민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해. 부모님이 허락해줄 리가 없으니 자금을 모으려면 무언가 일을 해야만 했어. 학교도 다녀야 하니 낮에는 할 수가 없고 해서 생각한 것이 한밤 중 의류수거함 털기.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의류수거함을 털고 그 옷들을 맡아 수선해서 파는 거지.


도로시는 의류수거함을 털면서 옷 외에 참 다양한 것이 버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심지어 살아있는 강아지가 옷 더미에 섞여 나오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의미를 알 수 없는 낯선 문구가 적힌 수첩을 발견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같은 의류수거함에서 사진 앨범, 자살의 징조를 나타내는 문구가 섞인 물건들이 연속해서 버려졌지. 도로시는 자살을 직감했어. 이름도 주소도 알 수 없는 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든 막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의류수거함에 만나자는 메시지를 남겨두어. 어떻게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정한 것은 없지만 만나면 뭐든 설득해보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3. 누가 행복하고, 또 누가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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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라는 소설의 첫 구절을 알고 있니?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문학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문장이야. 의미의 깊이가 확 와닿지 않니? 이 문장에서는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람의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을까 싶어. 행복한 사람은 대개 비슷할 거 같은데 불행한 사람은 정말 가지가지 사연으로 어렵고 힘들고 괴로워해.


학교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려봐. 누가 행복하고 또 누가 불행한 것 같니?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보이니?


이쯤 되면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해야 해. 행복과 불행은 그 사람 자신이 정해야 하는 문제일 테니까. 내가 저 친구의 모습을 보고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지. 그 친구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행복한 이들의 사연이 저마다 비슷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우리네 좁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 직접 반 친구들에게 너 행복하냐고 물어보렴, 친구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대며 자신을 불행하다고 말할 테니까.


4.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땐



의류수거함에 자신을 버린 아이. 알고 보니 도로시와 같은 나이의 남자 고등학생이었어. 연예인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키도 크고 잘생긴 데다가 남들이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아이였어. 겉으로만 본다면 도대체 자살할 이유가 1도 없을 것 같은데 왜 그 아이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을 끊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행복한 이유는 대개 납득을 하겠는데 불행한 이유는 공감하기가 어려워. 그러니 그 사람이 불행의 끝에 자살이라는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전부 헤아린다는 건 교만한 일이 될지도 몰라.


다만,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는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거야. 매일이 고통스럽고 괴로운데 다른 데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아. 아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렇게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면 세상 그 어떤 이들보다 자신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가득 차게 돼. 그게 쌓이고 쌓이면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목숨을 끊게 되는 거지.


불행하다 싶을 때는 내가 아닌 주변을 봐야 해.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 해 보지 않았던 일. 그 가운데 스스로의 불행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던 미국 청소년들은 친구들에게 어떤 댓글을 달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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